[우리말로 깨닫다] 어서 가라는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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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어서 가라는 인사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4.02.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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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우리말은 인사말이 단순해 보입니다. 다른 언어를 보면 아침이 다르고, 점심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고, 때로는 밤이 다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와 상관없이 ‘안녕하세요?’면 충분합니다. 아무 때나 만나면 같은 인사를 나누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외국인에게 한국어의 인사말은 쉽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어의 인사말은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어 흥미롭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인사말은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밤새 안녕하셨습니까?’였습니다. ‘편안히 주무셨습니까?’도 좋은 인사입니다. 어떤 사람은 밤에 무슨 일이 많이 일어나기에 그런 인사를 하냐고 하지만 편히 자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특히 나이 든 어른의 경우는 밤의 잠자리가 정말 중요합니다. 잠을 못 이루기도 하고, 여러 번 깨기도 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괴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편안한 밤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전 농촌의 아침인사는 거의 ‘밤새 평안하셨습니까?’였습니다. 농촌의 아침은 매우 일찍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에 동네 어른은 만나면 밤 동안의 안부를 묻는 것이 인사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밤새 평안하였는지를 묻는 이 말이 우리말의 아침인사인 셈입니다. 

외국학생들에게 물어보면 한국 사람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 ‘어디 가?’라고 합니다. 이해가 됩니다. 우리끼리도 어디 가냐고 묻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뭐 그리 꼬치꼬치 캐묻느냐고 하지만 궁금한 것도 사실입니다. 재미있는 곳에 가면 같이 가고 싶고, 위험한 데 가면 말리고자 하는 게 우리의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대답하는 사람은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겁니다. ‘일이 있어서’라든가, ‘저기 좀’ 정도로 얼버무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대답은 듣고도 더 묻지는 않습니다. 대답을 안 하는 데에도 사정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굳이 보자면 이 말이 우리말의 점심인사인 셈입니다.

한편 헤어질 때의 인사는 한국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서 복잡한 편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우선 ‘잘 가’와 ‘잘 있어’로 나누어집니다. 여기에 ‘다녀오세요, 다녀올게’ 등이 더해지면 복잡해집니다. 다시 올 곳이라면 갔다가 온다고 인사를 해야 정상적입니다. 만약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안녕히 계세요.’라고 한다면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근하면서 ‘잘 있어’라고 하면 뭔가 문제가 느껴집니다. 우리말에서 작별인사는 많은 경우 다시 만날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소풍도 나들이라고 하여 나갔다가 들어올 것을 전제하는 합성어입니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거나 어르신을 만났을 때, 우리는 반가운 인사말을 듣습니다. 바로 ‘어서 와.’입니다. 이 말은 번역도 어렵습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빨리 오라는 말이 되어야 하는데 영 어색합니다. 다른 언어로도 마땅한 번역이 없어서 환영한다는 말 정도로 바꾸어 씁니다. 우리말 어서 와에는 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 싶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감정이 깊이 담겨있기 때문에 ‘빨리’의 의미인 ‘어서’를 쓴 겁니다. ‘어서 오세요.’는 그래서 우리말의 대표적인 환영인사가 되었습니다. 가게에 가면 제일 많이 듣는 인사인 겁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묘한 인사말도 있습니다. 그건 바로 ‘어서 가라.’라는 인사말입니다. 이건 정말로 번역이 안 될 것 같습니다. 마치 헤어지는 것을 바라는 말투 같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헤어짐을 바라서 하는 인사는 아닙니다. 오히려 아쉬움이 더 깊게 묻어납니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강하지만, 그래도 보내주는 겁니다. 돌아가서 만나야 할 가족이 있고,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알기에 아쉽지만 어서 가서 할 일을 하라는 인사말입니다.

저는 어서 가라는 인사말에서 깊은 정을 느낍니다. 특히 연세 많은 부모님의 어서 가라는 인사말은 때로 코끝을 찡하게 합니다. 또 언제 볼지 모르는데, 어서 가라니요. 천천히 발길을 옮기고 싶은데 어서 가라니요. 인사말은 가장 형식적인 말이지만, 가장 우리의 감정을 담고 있는 말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