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국을 위한 변명 – 중국의 천하(天下)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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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국을 위한 변명 – 중국의 천하(天下) 세계관
  •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3.09.2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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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코트라 전문위원/ 중국 시장경제연구소장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15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남의 등불을 끈다고 자기 자신이 더 밝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吹灭别人的灯,并不会让自己更加光明)” “중화민족은 남의 나라를 침탈하려는 DNA가 없다.” “우리는 계속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 나가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말은 시 주석이 지구촌 지도자들에게 중국의 “천하 세계관(天下世界觀)”을 피력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표현의 방식이 동양적이라 서양인에게는 자못 낯설 수도 있다. 서양인들이 이 말의 뜻을 이해하려면 많은 동양(東洋) 공부가 필요하다.

어쩌면 이런 표현 방식은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서양이 직선적이라면 동양은 곡선의 문화이고, 서양이 계산적이라면 우리 동양은 관계중심의 인문학적 사고를 좋아한다. 화가들의 작품을 보더라도 서양의 그림은 인물 중심이 많지만, 동양화는 산수화가  많다. 동양의 화폭에서 차지하는 사람의 모습은 그저 아주 작은 모습에 불과하다. 서양은 자연을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여기지만 동양에서는 천지인(天地人)의 합일(合一)을 주장한다. 자연을 인생을 살아가는 동반자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시진핑 국가주석의 말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많은 함축적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남의 등불을 끈다고 내가 더 밝아지는 것이 아니다.”는 말은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OK 목장의 결투” 같은 사고(思考)가 아니다. 함께 협력하는 것이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의미다. “남의 길을 막는다고 자신이 더 멀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阻挡别人的路,也不会让自己行得更远)”는 표현도 비슷한 뜻이다. 사실 중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중국 사회에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있어도 ‘개인’이 없는 사회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중화민족은 남의 나라를 침탈하려는 DNA가 없다”라는 표현이다. 이 말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근대 역사를 보더라도 중국이 제국주의 정책을 갖고 서양을 정복하여 식민지로 삼은 적은 없었다. 오히려 한국과 중국이 서양의 군함과 대포에 굴복해야 했다. 19세기 서양의 침탈이 아시아를 향했을 때만도 중국은 강국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총과 대포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굴욕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수탈하려는 DNA가 없다는 표현은 이런 배경을 갖는다.

“남의 등불을 끈다고 자신이 더 밝아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동양식 사고 체계로는 서양의 침탈과 약탈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은 과감히 개혁개방을 했고 세계적인 석학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괄목한 성장을 이루어 냈다. 100년의 굴욕을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 과거의 강국으로 거듭나자는 결심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설사 강대국이 된다고 해도 누구를 침탈하려는 의도는 없다는 표현이 바로 ‘침략적 DNA’의 뜻이다. 중국의 천하 세계관은 애당초 식민지라는 개념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시진핑 주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계속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나가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아마도 이 표현은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면서 계속 나아가겠다는 뜻일 것이다. 장자(莊子)식의 동양적 사유다. 바람과 파도를 고난과 역경으로만 보지 않고 함께 갈 동반자로 본 것이다. 때로는 역풍이 불고, 때로는 파도가 거셀지라도 함께 가겠다는 것이다. 바람은 늘 역풍만 부는 것이 아니고, 파도가 항상 갈 길을 가로막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연설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의 화웨이는 7나노 기술이 탑재된 신제품을 출시했다. 미국의 반도체 업계가 허둥지둥 여러 분석을 내놓는 와중에 중국에 진출한 우리 업체는 “우리 제품이 절대 아니다. 우리가 공급한 것이 결코 아니다!”라는 변명을 미국에 하는 중이다. 왜 그래야 하는 걸까? 내 돈으로 중국에 공장 짓고 열심히 제품(반도체) 만들었는데 정작 중국시장에 팔지 못하는 사태는 왜 벌어진 것일까? 우리의 반도체 산업이 제대로 가고는 있는 것일까? 

지난해 중국이 코로나 봉쇄를 해제할 때 서방의 여론은 최소 100만에서 200만의 중국 인민이 죽을 것으로 예측했었다. 얼마 전에는 중국의 유력 부동산업체의 채무 불이행 사태가 발생하자 중국의 경제가 곧 붕괴할 것처럼 아우성을 쳤다. 부동산업체 한 곳이 무너진다고 중국경제가 바로 끝장이 난단 말인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상대를 잘 모르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싸우면 백번을 싸워도 우리가 질 수밖에 없다.
  
제갈량과 주유가 10만도 채 안 되는 군사로 조조의 100만 대군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상대를 알고 자신을 냉정하게 파악했기 때문이다. 화공(火攻)이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 해도 동남풍은 아무 때나 부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중국이 표방하는 천하 세계관은 동양적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전(戰)’이 아니라 ‘화(和)’다. 그러나 여기에는 절대적인 조건이 붙는다. 그것은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중국과의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원인을 중국은 깊이 살펴야 한다. 

다툼과 반목 그리고 상대를 향한 으름장은 중국이 추구하는 진정한 천하 세계관의 길이 아니다. 동양식 사고(思考)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서양인과 곧바로 ‘OK 목장’으로 가서는 안 된다.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을 잘 음미해 볼 필요도 있다. 부디 중국의 천하 세계관이 충돌이 아닌 화합의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중(中)은 천하의 근본이고 화(和)는 천하 모두가 공감할 도리(道理)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공자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