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선생 부부, 백년 만의 해후…국립서울현충원에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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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 부부, 백년 만의 해후…국립서울현충원에 합장
  • 서정필 기자
  • 승인 2023.08.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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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서 합장식 거행
국가보훈부는 8월 14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서  최재형 선생 부부의 합장식을 거행했다. (사진 국가보훈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가 1920년 최 선생이 순국한 지 103년 만에 고국 땅에서 만나 영면에 들었다.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8월 14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서 ‘백 년 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란 슬로건 아래 최 선생 부부의 합장식을 거행했다.

봉송식과 안장식으로 나뉘어 거행된 이날 합장식에는 최재형 선생 유족과 함께 박민식 보훈부 장관과 이종찬 광복회장,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한 독립 관련 보훈단체 인사 등이 자리했다.

이날 오전 10시 현충관에서 거행된 봉송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 ▲영현에 대한 묵념 ▲최재형 선생 공적 영상 상영 ▲헌화 및 분향 ▲추모사 ▲부부사진 증정 ▲추모공연 ▲영현 봉송과 전송의 순으로 진행됐다.  

국가보훈부는 8월 14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서  최재형 선생 부부의 합장식을 거행했다. 안장식에 앞서 열린 봉송식 모습 (사진 국가보훈부)

봉송식에는 앞서 지난 7일 국내로 모신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와 최재형 선생의 순국 추정지인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 선생 기념관(舊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뒤 13일 동해항을 통해 반입한 흙을, 위패 그리고 인공지능(AI)으로 복원한 부부의 영정사진과 함께 모셨다.

러시아 등 해외 각국에서 입국한 유족 15명을 대표해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파벨 씨가 헌화와 분향했고, 이어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이 최재형 선생의 5대손 최 일리야에게 최재형 선생 부부의 사진을 전했다.  

보훈부는 이날 전달한 영정사진에 대해 “생전, 최재형 선생 부부는 금슬이 좋았으나 안타깝게도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103년 만에 만나는 의미를 담아 부부 사진을 특별 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보훈부는 8월 14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서  최재형 선생 부부의 합장식을 거행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부)

안장식은 김수삼 국립서울현충원장 주관으로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서 하관, 허토 등 식순으로 40분간 진행됐다.

아홉살 때 부모와 함께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최 선생은 사업가로 자신의 노력으로 쌓은 막대한 부를 조국 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기꺼이 썼다.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고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한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총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는 8명의 자녀를 낳고, 선생의 독립운동을 도왔지만 1920년 4월 최재형 선생이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뒤에는 자녀들과 힘겹게 살아가다 1952년 사망했다. 여사의 유해는 당시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안장됐었다.

박민식 장관은 “생전, 사이가 좋았던 최재형 선생 부부가 순국 100여 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국립서울현충원에 함께하시니 너무나 기쁘다”라며 “최재형 선생을 비롯한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이분들의 애국정신을 계승해 발전시키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