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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바람의 위로, 대금의 위로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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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9  11: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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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이소라 씨의 이 노래를 들으면서 울컥하여 눈물이 주르륵 흘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시(詩)로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바람이 헝클어진 머리를 스치고, 외로운 마음에 위로가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바람이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때론 따뜻한 봄바람이, 때론 더운 볕을 식히는 한여름 밤의 바람이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나뭇잎을 바스락거리는 가을바람도 때로 외로운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때론 칼바람 같이 쨍쨍거리는 겨울바람도 상처 난 가슴에 위로가 됩니다. 바람은 기분 좋은 위로이기도 하고 슬픔을 이기게 하는 위로이기도 합니다. 바람은 내 속에 들어와 기운이 됩니다. 기가 흐른다는 말이 내 속에 담긴 바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 적도 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바람은 몇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한숨’입니다. 이 바람은 안도의 한숨이 되기도 하지만 걱정의 한숨이기도 합니다. ‘한’이라는 말이 크다는 뜻이니 말 그대로 크게 바람을 내보내는 겁니다. 어느 방향이건 간에 한숨을 쉬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집니다. 다른 바람으로는 ‘휘파람’이 있습니다. 휘파람은 바람이 돌아나가는 겁니다. ‘휘’에는 ‘돌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휘젓다, 휘몰다’의 느낌을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모은 입술 사이로 바람이 흘러나와 음악이 됩니다. 예술이 됩니다. 휘파람은 기분이 좋을 때만 나오는 소리여서 늘 반갑습니다. 내 속에 있는 편안함과 즐거움이 바람 소리가 되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바람 중에서 온기(溫氣)가 있는 것은 ‘입김’입니다. 입김은 여러 장면에서 쓰입니다. 추운 겨울에는 얼어붙은 손을 입김으로 따뜻하게 합니다. 우리 손을 잡고 호호 불어주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금세 얼어붙은 손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때로 입김은 뜨거운 것을 식히기도 합니다. 뜨거운 음식을 호호 불어주어 먹기 알맞은 온도로 바꾸어 줍니다. 음식의 온도는 내려갔는데 감정의 온도는 올라갔습니다. 사랑의 바람입니다.

입김이 감정의 온도가 되는 순간은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불어줄 때입니다. 약을 바르고 상처가 덧나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바람을 ‘호’ 하고 붑니다. 금방 상처가 아물 거라고 위로의 말도 건네주십니다. 상처가 아리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납니다. 감정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상처도 아물고 흉터도 남지 않기 바랍니다. 치유의 바람입니다.

저는 요즘 대금(大笒)을 배우고 있습니다. 대금은 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아가의 상처에 입김을 부는 것처럼 바람을 내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문득 깨달음이 왔습니다. 대금은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우울한 마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아마도 대금 소리가 상처를 어루만지는 바람소리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금은 소리를 듣는 것뿐 아니라 소리를 내면서도 위로가 된다는 겁니다. 아이의 상처가 금방 낫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에도 위로가 있습니다. 아이가 낫는다면 부모에게도 더 큰 위로가 될 겁니다.

대금을 불 때 호흡을 가만히 살펴보면 단전호흡(丹田呼吸)과 닮아있습니다. 길게 소리를 낼 때 단전에 힘을 주게 됩니다. 단전의 힘으로 대금을 부는 겁니다. 민요를 배울 때도 단전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전호흡은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만 마음에도 깊은 위로가 됩니다. 대금을 부는 것만으로도 단전호흡의 효과가 있습니다. 아가의 상처에 입김을 부는 마음으로 대금을 분다면 듣는 이에게도 부는 이에게도 치유의 시간이 될 겁니다. 대금은 바람이 들려주는 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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