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60년 만에 태권도로 금메달 딴 캄보디아
상태바
무려 60년 만에 태권도로 금메달 딴 캄보디아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10.15 14: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용석 국가대표팀 감독도 스타덤

▲ 수도 프놈펜 시내에 설치된 캄보디아 스포츠스타 광고판. 이번에 금메달을 딴 시브메이 선수의 모습도 보인다.

인천아시안게임이 끝난 지 벌써 보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 열기로 뜨거운 나라가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야말로 온 나라 전체가 들썩였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우리나라에선 언뜻 상상하기조차 힘든 분위기다. 지난 1954년 필리핀 마닐라대회에 첫 출전한 이래 60년 만에 딴 첫 번째 금메달이자, 메달로만 따지자면 44년 전인 지난 1970년 방콕대회 이후 처음 딴 메달이기 때문이다.

조국 캄보디아에 영광의 금메달을 안겨준 주인공은 태권도 종목에 출전한 손 시브메이(Sorn Seavmey) 선수. 고등학생 3학년인 이 소녀는 결승전에서 만난 이란 선수를 7대 4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 소식이 캄보디아 전역에 인터넷과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지자 온통 난리가 났다. 대회 막바지까지 메달 소식이 없자 심드렁하던 현지방송과 신문들도 앞다퉈 경기 소식을 일제히 속보로 전했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도 경기가 끝나자마자 금메달 축하현수막을 내걸었고, 교민 5,000여 명이 사는 수도 프놈펜 시내에도 다음날 곳곳마다 교민들이 자발적으로 단 축하현수막이 나부끼는 등 캄보디아 국민들과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주었다.

▲ 프놈펜 시내 곳곳에 내걸린 금메달 축하 현수막 모습. 한국교민들도 손수 축하현수막을 제작해서 내거는 등 현지인과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주는 분위기다.

지난 5일(현지시각) 늦은 밤에는 수백 명의 인파와 취재진이 포첸통국제공항에 도착한 선수단을 보기 위해 몰려 공항 주변은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뤘다. 체육부 장관을 포함한 정부 고위관료들도 선수단 마중을 나왔다. 심지어 밤 12시 가까운 시간대에 공항부터 프놈펜 시내까지 카퍼레이드가 펼쳐지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훈센 총리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금메달을 딴 시브메이 선수와 최용석 태권도감독(국기원 소속)을 기다렸다. 그날 밤 총리공관까지 초청하여 축하행사까지 열어주었다. 아시안게임 사상 첫 금메달 획득이 이 나라에 얼마나 큰 국가적 경사인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 자리에서 시브메이 선수는 캄보디아올림픽위원회가 정한 공식포상금 미화 2만 달러 외에 공로훈장과 함께 훈센 총리로부터 1만 달러의 특별포상금을 받았다. 아이폰 등 푸짐한 선물도 덤으로 받았다. 또한, 고3 어린 학생임을 감안, 교육부로부터 특례입학방식으로 대학입학자격을 부여받았고, 연간 1,500달러에 달하는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 벌써 현지기업들의 CF 광고 출연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18살 나이 어린 소녀에게 한마디로 인생역전의 꿈만 같은 시대가 열린 셈이다.

▲ 훈련 중인 손 시브메이 선수. 지난 2013년 태권도 훈련장에서 만난 시브메이 선수는 앳된 소녀 모습이었다. 당시 그녀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꿈이라고 말했었다.

최근 축하 환영식장에서 다시 만나 인터뷰에 응한 시브메이 선수는 소감을 묻는 말에 앳된 표정으로 "아직도 꿈만 같다"라고 대답했다. 함께 성원해준 한국 교민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기자는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을 앞두고 지난달 인천 구월선수촌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입촌식 행사장에서 캄보디아 선수들을 직접 만나 격려하고, 최용석 캄보디아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과도 짧게나마 인터뷰를 했다. 당시 최 감독은 메달 전망에 대해 그저 "해볼 만하다"고만 간략하게 답했었다. 감독조차 금메달까지 딸 수 있을 것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은 눈치였다. 입버릇처럼 대진운도 따라줘야 한다고 말할 만큼 동체급에 출전한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결코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최 감독이 우려했던 것처럼 준결승전에서 시브메이 선수는 큰 고비의 순간을 맞았다. 매우 어려운 상대를 만나 막판에 4점이나 빼앗기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다행히, 시브메이 선수는 특유의 끈질긴 근성을 발휘하며 초반에 잃은 점수를 끝까지 지켜냈다. 결국, 6대 5로 필리핀 선수를 꺾고 극적으로 대망의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는 집안 6남매 중 막내인 시브메이 선수뿐만 아니라, 언니인 다빈 선수도 함께 출전했다. 키가 182cm가 넘는 장신인 두 자매는 각각 –73kg급과 +73kg급에 도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자매는 희비가 엇갈렸다. 부전승으로 8강에 오른 동생 시브메이 선수가 우즈베키스탄 선수와 필리핀 선수를 연달아 격파하며 결승전에 오른 반면, 언니 다빈 선수는 그만 아쉽게도 첫 경기에서 팔 부상까지 당하는 불운 끝에 이란선수에게 패해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이다.

시브메이 선수가 준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공교롭게도 지난해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동남아경기대회(SEA GAMES) 결승에서 언니를 꺾고 금메달을 딴 선수였다. 어찌 보면 언니의 한을 동생이 제대로 풀어준 셈이다.

사실, 이번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언니 다빈은 여동생 시브메이 선수 못지 않게 메달유망주로 기대를 모은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최 감독도 다빈 선수의 메달권 입상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지난 2012 런던올림픽에서 대진운이 나빠 예선 초반에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아깝게 1대 2로 진 적은 있지만, 경험도 많고 가장 기대를 걸 만한 선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최근 환영행사장에서 만난 언니 다빈 선수는 "동생이 한없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아직 나이 어린 여자 선수들답게 내심 부럽고 샘도 날만도 하지만, 다빈 선수의 표정은 마치 자신이 금메달을 딴 것처럼 밝고 환한 모습이었다. 두 자매가 행사장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떠는 모습조차 보기 좋았다.

▲ 금메달을 딴 시브메이 선수 못지 않게 캄보디아의 유명인사가 된 캄보디아 태권도 국가대표팀 최용석 감독. 18년째 캄보디아 선수들을 육성해온 그는 최근 훈센 총리로부터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등급의 훈장을 받았다.

지난 1996년부터 벌써 18년째 캄보디아에서 태권도 국가대표 감독으로 일해 온 최 감독도 요즘 각종 축하행사에 불려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캄보디아에서는 시브메이 선수 못지 않은 인기스타가 됐다. 하지만 요즘은 누적된 피로와 긴장이 풀리면서 링거주사를 맞으러 병원으로 출퇴근하는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도 최 감독은 금메달을 딴 시브메이 선수보다는 초반에 탈락한 언니 다빈 선수에게 더 신경을 쓰고 마음을 주는 눈치다. 큰 언니 다빈 선수의 성격이 워낙 여리고 섬세해서, 혹시나 이번 대회 결과 때문에 선수로서의 자신감을 잃거나 선수생활을 포기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다섯 손가락 중 더 아픈 손가락도 있는 법인가 보다. 최 감독은 "당분간 무리한 훈련 대신 휴식시간을 충분히 갖게 한 후 다빈 선수가 다시 자신감을 찾을 수 있도록 정신교육을 강화시킬 계획"이라고 귀띔해주었다.

막내 시브메이 선수에게는 언니 다빈 외에도 태권도를 하는 친오빠가 있다. 현재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마디로 태권도 가족인 셈이다. 오빠 키도 190cm에 육박한다. 전직 배구 국가대표선수였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시브메이 남매의 가정은 불운했다고 한다. 지난 2002년에는 집에 불이 나 몽땅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육남매가 어릴 적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봉제공장을 다니며 육남매를 어렵게 키워냈다. 끼니도 거를 만큼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최 감독을 만난 것이다. 새로운 인생의 시발점이 된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었다.

최 감독은 유망주들을 육성 발굴하는 과정에서 유독 키가 크고 마른 소녀가 눈에 띄었다고 했다. 언니 다빈이었다. 체력도 좋고 충분히 키울 만한 재질을 갖고 있다고 최 감독은 판단했다. 감독의 기대에 부응해서 다빈 선수는 그동안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금메달을 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생 시브메이도 최 감독의 권유로 3년 전부터 태권도에 뛰어들었다. 선수경력은 짧지만, 실력이 일취월장해 최근 성적만 보면 언니보다 좋다. 지난 2013년 동남아경기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따며 기대를 모으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단 기수를 맡는 영광도 누렸다.

자매지간이기는 하지만, 언니 다빈은 말수가 적고 성격도 차분하다. 대신 동생 시브메이는 집안 막내답게 성격이 쾌활하고 적극적이다. 경기 초반에 실점을 한 상황에서도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역전승을 거듭한 것도 이런 외향적인 성격 때문일 것이다.

두 자매 모두 키도 크고 외모도 출중한 편이라 현재 패션모델로도 활동 중이다. 언니 손 다빈과 오빠 엘릿도 주요 국가행사 때마다 총리실 소속 경호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시브메이 선수에게 장래 꿈을 물어봤다. 그녀는 2016년 열리는 브라질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밝혔다. 최 감독의 꿈도 마찬가지다. "이제 다시 시작하기엔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40여 년간의 긴 내전으로 '킬링필드'에 '최빈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 이 나라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캄보디아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한 개로 전체 참가국 44개국 중 28위를 차지했다. 금메달 하나로 온 국민들이 하나가 되고,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이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의미 있고 축하할 일이다.

문득, 지난 1976년 대한민국 건국 이래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준 레슬링 양정모 선수의 이름이 생각난다. 우리에게도 흑백 TV 앞에 앉아 금메달 소식에 온 국민들이 환호하고 기뻐하며 나라 전체가 하나가 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느 순간 올림픽 메달 소식이 일상화되면서 이제는 웬만한 비인기 종목은 금메달을 따더라도 기억조차 못 하는 스포츠 강국이 됐다.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유치할 만큼 잘사는 나라가 된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선수들이 땀으로 일궈낸 금메달의 가치가 예전만큼 빛을 발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국론이 갈기갈기 찢긴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렇다. 메달 하나에도 기뻐하고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쳤던 그때가 그립기조차 하다. 어쩌면 가난한 캄보디아국민이 우리보다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런 시절로 다시는 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 다가올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만큼은 부자나라들만의 메달 다툼이 아닌 지구촌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모두가 즐기는 그런 스포츠 축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니까.

▲ 프놈펜에서 열린 축하행사장 테이블에 함께 앉은 시브메이, 다빈 자매의 모습. 언니 다빈(오른쪽)은 동생이 금메달을 대신 따서 한없이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