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국적주의와 혈통주의--동포법을 둘러싼 논란의 실체는?
상태바
과거국적주의와 혈통주의--동포법을 둘러싼 논란의 실체는?
  • 김제완
  • 승인 2003.10.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9월23일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발표되고나서 시민단체의 반대와 성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단체쪽에서 제기하고 있는 쟁점은 네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시행령 개정으로 헌재 판결을 만족시킬수 있는가. 둘째 직계 비속 2대까지로 제한한 것은 개악이 아닌가. 셋째 호적이 재외동포 규정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넷째 조선족들을 재외동포법으로 재외동포에 포함시키면서 이들을 출입국관리법으로 출입을 금지한 것은 기만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 양쪽이 저마다 논리를 내세우며 맞서 있다. 그런데 일반인들중에는 이 대립항들을 비교해나가다가 무엇이 옳은 것인지 분별하는 끈을 놓쳐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문제를 주제로 한 10월10일 밤의 TV토론이나 주요 당사자들의 일간지 칼럼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양쪽의 주장을 낳은 큰 원칙 또는 키워드가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상이 복잡하게 보일 때는 본질에 주목해야 하기때문이다. 논란의 연원을 좇아가보면 혈통주의와 과거국적주의의 대립에 이르게 됨을 알 수 있다. 혈통주의는 우리 민족의 피가 섞인 사람은 누구나 민족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며 과거국적주의는 과거에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의 후예들을 동포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이 두가지가 이번 논란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재외동포법 2조2호에는 외국국적동포를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라고 규정해 과거국적주의에 입각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포단체들은 이 조항이??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으므로 마땅히 혈통주의에 입각한 법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불합치 판결이 과거국적주의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나간 사람의 후손들로 규정한 시행령에 맞춰져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그래서 시행령 개정만으로 헌재의 요구를 만족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8일 조웅규의원이 헌재에 요청해서 받아낸 의견서에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해석을 하고 있음에도 법무부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
둘째 자손이 외국인과 결혼하여 2대까지 내려가면 피가 1/4밖에 섞이지 않게 되는데 여기까지만 동포로 인정하자는 것이 법무부안이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재외동포법에는 제한이 없던 것인데 새로이 규정돼 있어 반대 진영의 분노를 사고 있다. 법무부는 그러나 이를 제한하지 않으면 혈통주의를 인정하는 셈이 되며 이것은 헌재의 판결취지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셋째 호적을 근거로 한 것은 과거국적주의 입장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 우리 역사를 통해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공신력’있는 즉 국가기관이 신뢰할 수 있는 문서는 호적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 법무부의 입장이다.
이외에 지난 99년 재외동포법 제정과정에서 중국동포를 제외했다며 단식투쟁까지 했던 서경석목사가 주요 동포단체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도 혼란을 더해주고 있다.
서목사는 최근 법무부 개정안에 환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법무부 안에 따르면 현재 조선족들 대다수가 재외동포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국적주의이든 아니든 더 많은 조선족이 재외동포에 포함되면 무방하다는 입장인 듯하다. 주요단체들이 혈통주의를 원칙으로 두고 있는 것과 여기서 입장이 길린다. 서목사는 출입국관리법으로 사실상 중국 러시아동포들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으나 이것은 별도로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재외동포법 개정안을 둘러싼 지금의 논란이 혼란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이처럼 근본적으로 입장과 관점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논란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인  과거국적주의와 혈통주의중 어느 것이 재외동포정책의 근간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그리고 헌재의 헌법 불합치 판정이 요구하는 것이 어느 쪽인지에 대한 해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각나라의 사회적 역사적 조건과 필요에 따라서 혈통주의나 과거국적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논의는 이 두가지중에 어느 것이 옳은지를 따지기보다 각각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로 맞춰져야 한다.
이 선택에는 현실적 계급적 이해가 담보돼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조선족동포들을 차별하면 안된다는 인도적 입장과 사회 혼란을 경계하는 보수계층의 이해가 혈통주의와 과거국적주의라는 담론의 뒤에 숨어 있다.
그렇다면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높은 노무현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선택할 길은 분명해 보인다. 법개정 실무작업을 담당하고 있는  법무부와 외교부 관리들은 이같은 점을 명심해야 한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