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알제리와 수단에서 ‘아랍의 봄’ 두 번째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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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알제리와 수단에서 ‘아랍의 봄’ 두 번째 물결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 연구소장
  • 승인 2019.04.1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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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일주 중동아프리카 연구소장

2011년 튀니지에서 ‘아랍의 봄’의 첫 번째 물결이 시작됐을 때 아랍 언론들은 “우리는 튀니지와 다르다”고 했다. 당시 이집트 언론인과 정치 분석가들도 “여기는 튀니지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2011년 1월 25일 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당시 아랍의 여러 국가의 정치 분석가들은 자기네 나라를 튀니지의 혁명과 연결짓고 싶어하지 않았다. 

시민의 봉기로 시작된 알제리와 수단은 2019년 4월 2일 알제리의 대통령 압둘 아지즈 부타플리카(20년 통치)가 하야했고, 4월 11일에는 수단 대통령 우마르 알바시르(30년 통치)가 군부 쿠데타로 자택 연금됐다.

그러나 외신들은 아프리카에서 독재자가 떠나가도 혁명은 해피엔딩이 드물기 때문에 지금 두 나라의 국민들이 가장 어려운 시험대에 올라가 있다고 논평했다. 지금 수단에서는 군부가 정권을 잡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정치 세력들이 나서서 국민과의 대화를 가지라고 요청했고, 알제리는 기존 정치인들이 잔류하고 있으나 4월 18일 현재 두 나라에는 아직도 시위대가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아랍의 정치 평론가들은 지금 이 두 나라가 필요한 것은 다음 세 가지라고 했다. 첫째, 과도기에 군대를 비롯한 국가기관이 제 할일을 해주어야 하고, 둘째,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 시위대가 자제를 하고, 셋째, 국민의 기본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알제리의 동쪽 그리고 수단의 북쪽에 위치한 리비아에서는 1차 아랍 혁명에서 카다피가 살해되자 당시 대부분 리비아인들은 포괄적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기를 원했다. 그러나 리비아는 정치적, 인종적, 지리적으로 나뉘어 버렸고, 이번 달에는 리비아 동부의 칼리파 하프타르가 UN이 지지하는 서부의 트리폴리 정부를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리비아와 튀니지 그리고 수단이 갖는 공통적인 문제는 일반 시민이 원하는 것과 지배 엘리트층이 원하는 것과는 그 격차가 너무 컸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유혈 내전이 계속됐던 알제리에서는 대통령의 5번째 연임을 반대한다는 것이 시위의 첫 번째 발단이었다. 수단에서는 1989년 나라를 구하겠다고 쿠데타를 했던 오마르 알바시르가 국민도 정당도 아닌 자신이 혼자 통치하다가 수도 카르뚬이 아닌 지방에서 시위가 시작된 후 전국으로 확산됐다. 그는 다르포르에서 30만 명을 살해했고, 남수단과 분리하면서 수단 국토의 3분의 1과 국민의 3분의 1 그리고 원유 수익의 85%를 잃어버렸다.

2011년 그 해 남수단이 북부 수단과 분리되면서 수단은 인플레가 70%에 달했는데 그 당시 외환 보유고의 80%는 남수단 유전에서 나온 것이었다. 결국 2017년 1달러에 6.9파운드 하던 것이 2018년 18파운드가 되면서 소비재 물가가 급등했다. 밀가루 50킬로그램짜리 한포대가 24달러에서 65달러로 폭등한 것이다.

수단에서는 시위 초기에 정당들은 선뜻 참여하는 것을 주저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국제적으로 고립(1994년 다르포르 학살 사건에 대한 국제 형사 재판소의 2009년 판결과 오사마 벤 라덴을 1990-96년 동안 수단에 머무르게 한 것)됐기 때문에 그에게는 도탄에 빠진 국가 경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세 나라에서 길거리로 나온 주 계층은 여성을 포함한 청년들이었고 그들은 실직과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했다. 수단은 경제적인 문제로, 리비아는 부족과 군벌의 싸움으로, 알제리는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의 반대가 주요 특징이었다. 서구 언론들은 이 세 나라가 주변 아랍 국가는 물론 외세에 휘둘리지 않고 또 군대나 보안의 수장이 정권을 잡지 않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사실 알제리와 수단에서 정권이 무너질 때 그 현장에 군대의 개입이 있었다.
 
알제리와 수단은 하나의 정치적 문화적 공간 안에 있다. 작년까지도 이 지역에서 국민들은 “우리가 시리아 또는 예멘처럼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2011년 아랍 혁명 이후 시리아와 예멘, 리비아가 아직까지 국가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의 언론인들은 두 나라가 2011년 혁명이 일어난 아랍 국가들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2011년 혁명 이후 과도기 집권자들이 국정 운영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튀니지보다 이집트에서 과도기 정부의 실패가 더 컸던 이유는 튀니지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소문이 이집트에 전해진 것 때문이라고 칼럼니스트 마으문은 주장했다(알샤르끄 알아우사뜨, 2019년 4월 15일자, 14면). 그는 아랍인들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상당수가 책을 읽고 공부하던 문화보다는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할 사이 없이 그냥 남의 말을 듣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2011년 아랍 혁명에 일어났을 때 아랍인들은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치르게 될 것이 뭔지를 잘 몰랐다. 이미 서구의 서점가에는 이런 책들이 널려 있었지만 아랍인들은 그런 책을 읽지 않았다.

아랍인들은 이 두 나라와 국경을 같이하는 나라들 즉, 수단에는 이집트가 그리고 알제리에는 튀니지와 모로코가 국경을 접하고 있으므로 각별히 경계태세를 가지라고 주문한다. 정부의 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과도기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갑자기 일어나기 때문이다.

2011년 아랍혁명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 나라의 국민성에서 변화를 가져왔고 혁명 직후에는 길거리에서 강탈, 절도, 폭력, 살해가 증가했고 기존의 윤리가 무너지고 길가에는 여성에 대한 성희롱과 성폭력이 잦았다.

지금 알제리에서는 혁명 전에 침묵하던 언론들이 지금은 시위 현장 상황을 실시간 보도하고 있다. 사실 알제리에서는 1989년 하나의 정당이 정치권을 좌지우지하면서 국가가 언론 기관을 독점해 왔었다. 1992년 수많은 언론인들이 과격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에 의해 암살된 이후 군대의 언론 검열이 심해지자 알제리 언론인들은 표현의 자유가 없었었다.

4월 16일 수단에서는 과도기 군사위원회가 검찰총장 등 국가 주요 요직의 사람들을 해임시켰다고 발표했다. 군부는 앞으로 4년간 과도기 정부를 이끌어갈 민간인 주도의 정부가 구성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수단 군부는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켰다고 했고 정부의 주요 인사들도 구금시켰고 곧 공정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연합의 평화–안전 위원회(African Union’s Peace and Security Council)는 15일 안에 민간주도의 과도기 정부에게 권력을 이양하라고 촉구했다.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그룹들은 현재의 ‘과도기 군사 위원회(MTC)’가 군과 민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과도기 민간 통치위원회’를 구성하라고 했다. 북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시작된 2011년 ‘아랍의 봄’의 불씨가 이제 아랍 세계의 절반을 지나갔다. 이번 두 나라에서 일어난 혁명의 불길이 어디쯤 가서 멈출지 아직은 단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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