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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역사산책] 고조선의 개방적 권력승계‘시조 단군께서 1,048년을 사셨다’는 기록은 전기조선을 표현한 것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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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5  18: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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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금년은 단군기원 4352년이다. 고조선의 개국이 4352년 전이라는 말이다.이암의 ‘단군세기’는 고조선 43명의 단군과 대부여 4명이 다스린 2,096년 세월을 기록하고 있다. 대부여를 제외하면 고조선은 1908년간인데, 전기조선, 후기조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기조선은 21명의 단군이 다스린 1048년간, 후기조선은 22명의 단군이 다스린 860년간이다.

전기조선의 개방적 권력승계

1대 단군왕검은 배달의나라 18대 ‘단웅 환웅’의 셋째 아들로 이복 형 두 사람을 물리치고 배달의나라 19대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1세 단군왕검께서는 기마민족과 농경민족의 대등한 통합을 선언하고 ‘조선’을 새롭게 개국했다. 기마민족의 지배를 받던 농경민족의 공주였던 어머니 ‘웅녀’의 염원에 공감하고 그 이상을 실현한 것이다.

전기조선의 2대 부루단군부터 21대 소태단군까지 20명의 단군 중에, 9명은 황태자로서 단군의 권력을 승계했다. 다른 9명은 장관 중에서 능력이 검증돼 단군으로 추대됐다. 우가(농업경제장관) 7명과 양가(교육부장관) 2명이 발탁됐다. 나머지 2명은 황태자도 아니고 장관도 아닌 능력자를 발탁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조선은 황태자와 장관들 중에서 개방적, 경쟁적으로 능력이 검증된 자를 단군으로 추대하는 전통을 확립했다. 황태자가 권력을 승계하는 기득권 실현율이 절반이 되지 않는다.

전기조선의 문물제도와 치적

단군세기를 보면 전기조선 단군들의 업적은 치수와 산업, 교육, 역사 편찬, 천문대, 달력, 화폐, 가림토정음, 식목, 화랑, 화백제도 등 문물제도와 문화 발전이 풍요롭다.

2대 부루단군은 오행치수와 도량형 표준을 확립하고 농업을 진흥시켰다. 3대 가륵단군은 가림토정음을 창제하고 ‘배달유기’ 역사를 편찬했다. 5대 구을단군은 갑자를 사용한 달력을 제작했고, 6대 달문단군은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화백제도를 시행했다. 10대 노을단군은 가축사육을 시작했고, 처음으로 감성대(천문대)를 설치했다.

11대 도해단군은 대시전을 세워 배달의나라를 개천하신 환웅천왕의 가르침(홍익인간)을 백성에게 전했다. 13대 흘달단군은 국민교육기관인 소도와 경당을 세우고, 천지화랑을 육성했다. 15대 대음단군은 ‘80분의 1’로 세법을 개정하고, 서쪽 약수에서 금과 쇠와 기름을 채굴했다. 16대 위나단군은 구환의 제후들을 모아 영고탑에서 삼신 상제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환인, 환웅, 치우, 단군왕검도 함께 모셨다. 또 매년 1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시조 단군께서 1,048년을 사셨다’는 전기조선을 표현

후기조선은 색불루단군의 정변(쿠데타)으로 시작됐다. 고조선 최초의 정변으로 시조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개국한 이후 소태 52년(BC1286년)까지 1048년간의 전기조선이 막을 내렸다. 동사강목, 응제시주, 세종실록 등의 역사기록이 ‘시조 단군께서 1,048년을 사셨다’고 기록한 것은 색불루 단군의 제위 찬탈사건으로 전기조선이 끝난 것을 표현한 것이다.

21대 소태단군 재위 중에 개사원의 욕살 ‘고등’이 휘하 군대로 서북지역을 평정하고 단군께 우현왕으로 임명해 주기를 강청해서 허락받았다. 그 후 고등의 손자 ‘색불루’가 우현왕을 세습했다. 노쇠한 소태단군이 상장군 ‘서우여’에게 살수 땅 100리를 주고 ‘기수’로 임명해 제위를 물려주려하자, 색불루가 반발하고 주위 세력과 수렵족 수천을 모아 ‘녹산’에서 스스로 단군에 즉위했다. 나라의 분열과 내전을 우려한 소태단군은 할 수 없이 색불루에게 옥책과 국보를 내주고, 상장군 서우여도 서민으로 폐하고 말았다.

후기조선의 세습적 권력승계

색불루단군 이후 후기조선 21명의 단군 중에 18명의 황태자가 권력을 세습했다. 나머지 3명만 황태자가 아닌 사람이 예외적으로 추대됐다. 후기조선의 왕권세습은 국가권력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명분이 있으나, 황태자로 세습이 고정되면서 기득권세력이 강화되고 백성들의 부담이 커지고 민생이 피폐해졌다. 다양한 인재 육성과 개방적 리더십 경쟁이 제한되는 약점때문이다. 따라서 후기조선은 정치력 약화와 매너리즘으로 국력이 쇠퇴했고, 860년 만에 대부여로 넘어갔다. 후기조선은 새로운 문물제도 창안이나 진취적인 국가 활동이 적어 역사기록이 빈약하고 단조롭다.

기자조선은 서우여의 ‘번조선’

색불루가 22대 단군으로 즉위하자 서우여가 반발하여 군대를 일으켰다. 개천령이 토벌에 나섰으나 패하여 죽었고, 색불루가 직접 토벌에 나섰으나 실패하고 협상을 통해 화해가 이루어졌다. 색불루는 단군으로 즉위하고, 삼한을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단군은 삼조선 전체를 다스리는 황제로서 진조선을 직할 통치하고, 서우여를 ‘번한’으로 임명해 번조선을 다스리게 했다. 막조선은 려원흥을 ‘마한’으로 임명해서 맡겼다.

정변을 일으킨 색불루단군의 정통성을 인정하기 싫었던 후세 사가들은, 단군의 후계자로 ‘기수(奇首)’에 임명됐던 서우여의 번조선을 소태단군의 정통성을 이은 것이라 하여 ‘기자조선(奇子朝鮮)’으로 표현했다. 발해 대조영 황제의 동생 대야발이 편찬한 ‘단기고사’도 번조선을 ‘기자조선’이라 했다. 그러나 번조선은 단군이 통치하는 삼조선의 하나이므로, 기자조선은 별개의 왕조는 아니고 번조선의 별칭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기의 ‘기자동래설’은 역사 날조

중국에서 말하는 기자(箕子)는 상나라 조정의 신하였는데, 상나라 ‘주’왕이 주나라 무왕에게 패망할 때 ‘주’왕의 이복형인 ‘미자’(기자의 제자)에게 주나라에 항복하도록 권유해 ‘송’나라 제후로 분봉 받게 했다. 기자 본인은 항복하지 않고 주나라 감옥에서 갇혔다가 풀려나 서화에 칩거했다. 죽어서 몽현에 묻혔는데, 서화는 송나라 도읍지 상구지역이다. 

사마천의 사기 ‘송미자세가’에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후로 봉했다”고 기록했는데, 사실과 다르게 날조한 역사기록이다. 주 무왕 앞에 나오지도 않고 칩거한 기자가 무슨 분봉을 받고 정치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조선 땅은 정복하거나 제후를 봉하기는커녕 주 무왕이 가보지도 못한 먼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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