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 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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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 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
  • 안동진 한국외대 토대연구팀 전임연구원
  • 승인 2019.03.1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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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손자,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 제4권 펴내고 싶다
▲ 한국외대 토대연구팀원들과 함께 한 최 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 회장 (앉아 있는 이)이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 제3권을 들고 있다. (사진 안동진 한국외대 토대연구팀 전임연구원)

성큼성큼 앞서기 시작한 봄기운을 따라가기 바빴던 3월 초, 한국외국어대학교 토대연구팀(연구책임자 송준서)은 서울의 어느 한식당에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발렌틴 회장을 만났다. 

현재 한국외대 토대연구팀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 고문서 자료보관소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한인 관련 러시아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있다. 최재형 선생(1860~1920)은 러시아 한인들의 항일 운동과 임시정부에 엄청난 자금 지원을 했으며 러시아 한인들의 대부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 선생을 도왔고 이범윤, 홍범도, 이위종 선생 등과 함께 활동하며 동의회, 권업회를 조직했다. 또한  ‘대동공보’를 발행하고 극동과 시베리아의 러시아 한인 마을에 32개의 한인학교를 설립했으며 한인 자녀들을 매년 선발해 페테르부르크로 유학시켰다. 
암혹한 시기에 교육가, 사업가, 독립운동가, 언론가 등 다양한 길을 걸으며 활활 타오르는 삶을 살았던 셈이다.

최재형 선생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에 선임됐으나 부임하지 않고, 러시아에 남아 한인들을 위해 살았다. 그 공로가 인정되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올해에는 3.1문화재단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과 최재형 선생 가문에 특별상(상금 5천만원)을 수여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선생의 집을 대한민국 보훈처에서 구입했으며 이후 이 공간을 ‘최재형기념관’으로 꾸며 오는 3월 28일에 문을 열 예정이다.

이런 조부를 둔 최발렌틴 회장은 최재형 선생의 4남 7녀 중 셋째 아들 소생이다. 러시아에서 군수사업을 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모두 항일독립운동에 쏟아 부은 최재형 선생이 일제에 의해 사살당한 후 남은 가족들은 집단농장을 전전하며 어려운 삶을 살았고 최 회장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최  회장은 구소련에서 ‘계급의 적’이었던 조부 최재형 선생으로 인해 아버지 또한 2년 여의 옥고를 치렀고 자신도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입 밖에 내는 것조차 삼가며 살았던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나마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조부의 특별한 조국 사랑은 가슴에 남았고, 노년에 이르러서야 조부의 흔적과 유적을 찾아 그 뜻을 받들고자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를 설립하고 그 회장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러시아 한인 독립유공자들의 삶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 제 1, 2, 3권을 펴낸 최 회장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 제3권 표지


Q. 간단하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최 발렌틴 회장(이하 최) : 저는 ’계급의 적‘으로 몰렸던 조부 때문에 아버지가 감옥에 계실 때 어머니가 면회 가시던 곳이었던 쿠이비세프(현 사마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알마아타로 이주해 그곳에서 자라고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만년설이 덮인 산 정상들이 보이는 아름다운 푸른 도시가 아직도 꿈에 나타나곤 합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지요. 

학교를 마치고 부모님 곁을 떠나 모스크바로 유학했습니다. 러시아의 최고 명문 공대인 바우만 공대를 졸업했습니다. 그 후 항공산업성의 가장 우수한 분과 대학인 전소경합금대학에서 일했습니다. 과학에 전념했고 기술과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결혼해서 두 명의 자녀를 뒀습니다.
 

Q.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 제3권의 자료는 어떻게 모으셨습니까?

최 : 주로 역사적 문헌, 고문서 자료,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서한 등을 활용했습니다. 관련 저작이나 자료 등은 빠르게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 제 1, 2권을 발행했기에 이미 어떤 도서관과 어떤 문서보관소를 찾아봐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또한 제 1,2권이 발행된 후 고려인들이 제가 하는 일을 알고 편지를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저희 러시아 고려인들은 ‘모두 연해주에서 나왔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미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혁명, 전쟁, 스탈린의 숙청 등 가장 힘든 사회적 대변동이 우리 시대를 덮쳤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책과 교과서들은 저명한 사람들이 계급의 적으로 사라져 버렸듯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세대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언젠가는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우리가 발간한 책들은 러시아 고려인들에게 이 문제를 건드리게 만들었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우리가 항일투쟁 애국자들의 전기뿐만 아니라 사진을 실어서 출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애국자들의 멋진 얼굴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힘들지만 찬란했던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서 있던 애국자들의 눈을 젊은이들이 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보훈처에서는 한국에서 훈장을 받은 애국자들의 명단을 우리에게 보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와 CIS 국가에서 활동하는 모든 고려인 대중매체를 통해 그 명단을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부모들의 이름을 발견하기도 했고 우리에게 감동적인 편지들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조차 잊힌 애국자들의 후손들이 먼 알마아타나 타시켄트뿐만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지척에 살고 있는데도 몰랐던 경우도 많았습니다. 책을 발간하면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위업을 알리고 기억하게 할 수 있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Q. 조부 최재형 선생에 대해 기억나는 부분이 있습니까?

최 : 구소련에서 조부는 ‘계급의 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손들은 스탈린 숙청의 희생자들이 됐습니다.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복권이 되어 관료로 성공도 했습니다. 저는 평생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학자이자 리더였습니다. 제 삶에서 고려인이라는 자리는 없었습니다. 

조부 일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제가 노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1995년 한국 방문이 제 눈을 열어줬습니다. 제 안에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에 눈을 떴습니다. 

이후 러시아 고려인들의 항일 투쟁과 그 지도자로서 제 조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됐습니다. 

저는 ‘러시아고려인독립운동유공자후손협회’를 설립했고 ‘최재형’,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 1~3권, ‘제2차 세계대전 전선에 선 소비에트 한인들’, ‘평생에 그는 항상 나와 함께였다’를 비롯해 몇 권을 책을 집필했습니다. 

우수리스크에서는 외국어대학교 반병률 교수와 함께 조부께서 살았던 집을 발견했고(현재 그 곳에는 최재형 박물관이 설립됐습니다), 김만겸, 이범진, 한명세, 김경천 등의 애국자들과 기념비적 사건들에 관한 세미나와 회의를 모스크바에서 주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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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재형 선생의 친손자 최 회장을 실제로 뵈니 역사의 한 현장에 있는 것 같이 감격스러웠고 또한 바쁜 서울 일정 중에 귀한 시간을 내 주신 것이 고맙기만 했다. 

최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본인의 노력은 뒤로 하고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 항일 독립운동’ 제3권 출간을 위해 애써주신 외국어대학교 토대팀 연구원들과 반병률 교수, 그리고 저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고 싶다는 말로 그 겸손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들의 적극적 참여가 없었더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야말로 최재형 선생과 같은 분이 없었다면 현재의 존재 자체도 불가능했고 최  회장의 노력이 없었다면 항일운동의 의미를 살아있 듯 생생하게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최 회장은 아직도 러시아 전역에서 조상들의 사진과 사연들을 담은 편지들이 날아오고 있다며, 여력이 된다면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 제4권을 발간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또한 “위인이나 영웅뿐만 아니라, 기자 생활을 하며 그 동안 만났던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러시아 고려인들의 삶을 기록한 노트가 너무나 많다”라며 ‘어느 러시아 고려인의 수기’ 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작년에 팔순을 지낸 최 회장의 열정이 결실을 맺어,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러시아 한인 항일운동 영웅들과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러시아 고려인의 삶을 지면으로 엿볼 수 있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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