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크메르어 자판 만든 박용기 캄보디아 국립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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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크메르어 자판 만든 박용기 캄보디아 국립기술대 교수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8.07.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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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교수들과 함께 개발 성공, 필요한 사람들 모두에게 무료 배포 계획

▲ 박용기 교수가 개발에 함께 참여한 캄보디아 학과 조교와 함께 크메르어 자판용 스티커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박정연 재외기자)

지나고 나면 누구나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쉬운 일이지만, 정작 시도 당시에는 아무도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일을 가리킬 때 우리는 종종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말을 비유적으로 쓰곤 한다.

한국국제협력단(이사장 이미경, 코이카)를 통해 캄보디아 국립기술대학교에 파견된 박용기 교수(68)가 해낸 일도 ‘콜럼버스의 달걀’과 많이 닮아있다. 박 교수는 최근 키보드 자판에 붙일 수 있는 크메르어자판 스티커 개발에 성공했다.

언뜻 들으면 자판에 붙이는 스티커를 만든 것이 대단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캄보디아 현지 사정을 안다면 박 교수가 해낸 일의 의미가 적지 않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캄보디아 현지인들은 그동안 대부분 영문으로 된 컴퓨터 자판을 사용해 왔다. 크메르어로 된 자판은 시중에서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자판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스티커가 없어도 글자 위치를 외워 칠 수 있을 것 같지만 크메르어의 특성 상 그것이 한글처럼 쉽지만은 않다.

한글과 달리 크메르어는 자음과 모음을 합해 50개가 넘기 때문이다.

컴퓨터 사용에 익숙하지 않거나 고령인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 같은 상황은 그동안 캄보디아 사회 전반의 전산화 작업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일반 국민들의 컴퓨터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부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캄보디아에 정말 필요한 일을 해냈다.
 
▲ 박용기 캄보디아 국립기술대 교수는 크메르어 자판 개발에 학과 현지인 동료교수들와 조교들의 조언과 도움이 컸다고 밝혔다. (사진 박정연 재외기자)

고려대 전자공학과 박사 출신의 박 교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선임연구원, KT 사업개발단 국장을 거쳐, KT 교환기술연구소장, KT 멀티미디어연구소장, 세종텔레컴 부사장, 컴앤씨 사장 등을 거쳤다.

이러한 이력을 가진 박 교수가 자신의 전공분야와는 전혀 무관한 크메르어 자판 스티커를 개발하겠다고 나섰을 때, 학교 측 반응은 한마디로 별로였다. 이 학교 총장은 물론이고, 동료교수 등 주변에선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박 교수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속 학과 현지인 동료교수들을 설득해, 함께 크메르어 자판 스티커 개발연구에 돌입했다.

더 복잡한 전자통신 분야 일을 해온 박 교수 입장에선 자판용 스티커 연구개발은 상대적으로 쉽고 간단한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여러 진행과정을 거치면서 자판개발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현지 기술이나 인쇄수준에 대한 이해 부족 탓도 있었다. 현지인 동료 교수들과 함께 연구 끝에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침내 자판 배치까지 완성시켰다.

하지만 이번엔 자판 스티커의 품질이 영 시원찮았다. 우선 타이핑을 칠 때 손가락이 잘 미끄러지지 않고 끈적임도 없어야 하며, 비가 자주 오는 이 나라 기후 특성을 고려해, 인쇄글자가 잘 지워지지 않도록 코팅처리가 되어야 했지만, 그런 재질의 스티커를 제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기술적인 보완과 테스트도 필요했다. 박 교수는 결국 소속 연구재단에 도움을 요청, 한국에서 직접 주문 제작된 우수한 품질의 스티커 완성품을 가져오기로 최종 결심했다.

우여곡절과 기다림 끝에 최근 1차분 물량으로 제작된 자판 스티커 5천장이 도착했다. 박 교수는 일단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교와 인근 대학 재학생들에 배포, 반응을 살펴봤다.
 
▲ 최초로 크메르어 자판 스티커를 개발한 박용기 캄보디아국립기술대학 교수 (사진 박정연 재외기자)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여기저기서 자판 스티커를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영어 자판을 외운 학생들마저도 자국어로 된 크메르어자판을 선호했다. 전문분야와는 거리가 먼 스티커 개발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에 반신반의하던 대학 측도 뒤늦게 박 교수의 능력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최근 기자는 박 교수로부터 건네 받은 견본 스티커 수십여 장을 현지 청소년들에게 나눠주고 반응을 살펴본 적이 있다. 그런데 크메르어로 된 자판을 써 본 학생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다. 친구에게 주고 싶다며 몇 장 더 달라고 손을 내미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바뚝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로왓 양(16)은 “그동안 크메르글자가 없어 일부러 종이를 잘라서 자판 글자를 만들어 쓴 적도 있는데, 새 자판스티커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사용하기 편하고 글자도 무척 예쁘다” 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크메르어 자판스티커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이 이렇듯 예상보다 뜨겁자, 최근 박 교수는 당초 세운 목표를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캄보디아 전국에 크메르어 자판 스티커를 배포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추가 제작비가 필요했다.

그동안 한국연구재단(NRF)으로부터 연구개발비를 지원받았지만, 캄보디아 전역에 수 십 만장 이상을 제작 배포하기에는 재정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당장 기업이나 독지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때마침 이런 사정을 접한 현지 진출 우리 기업이 스티커 제작에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덕분에 박 교수도 천군만마 큰 힘을 얻게 됐다.

박 교수는 “자판 스티커를 추가 제작해 전국 시골 초중고는 물론이고, 크메르어 자판을 필요로 하는 각 사회단체나 정부기관, 일반인들에게도 무료로 배포하겠다”며 “캄보디아에서 누구나 컴퓨터를 쉽게 사용하게 함으로써 사회 전산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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