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캄보디아에서 후추 기르는 한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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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캄보디아에서 후추 기르는 한국인들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7.08.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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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속에서 땀 흘리며 최고 품질 후추 만드는 한국농업인

▲ 한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현지 후추농장을 둘러보고 있는 김원진 대사 (사진 박정연 재외기자)

기자는 15일 주캄보디아대사관 다목적홀내에 마련한 농산물특별전시회를 다녀왔다. 이 행사는 캄보디아농산업협회(회장 김정인)가 창립6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행사였다.

쌀, 바나나, 사료, 비료, 유정란, 참기름 등 한국 농산인들이 현지에서 직접 생산한 농산품들은 품질도 우수하고 종류도 다양했다. 이 중 유독 눈에 띄는 농산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후추였다.

후추는 손이 많이 가는데다, 초기투자비용도 많이 드는 작물이다. 게다가 수확 후에도 건조기술에 따라 맛과 품질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에 생산도 쉽지 않다.

그만큼 재배하기도 까다롭다는 얘기다. 이런 후추를 이역만리 연중 무더운 캄보디아까지 와 기르는 한국인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농촌진흥청(청장 라승용) 산하 방진기 해외농업기술개발(코피아)사무소장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후추농장을 운영하는 우리나라 농업기업은 개인농장을 포함해 모두 4개다.

캄폿주와 트봉크멈주에 각각 1곳, 몬돌끼리에 2곳이 있다. 전체 경작면적을 합치면 무려 4~500헥타르가 넘는다. 캄보디아에 10년 넘게 살면서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최근 수도 프놈펜에서 차로 6시간 떨어진 몬돌끼리주 후추농장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350헥타르 땅에 지어진 농장은 차를 타고도 다 둘러보기도 힘들 정도로 규모가 무척 컸다. 여기서 일하는 현지인 근로자 수만도 700명이 넘었다.

인삼밭처럼 태양가리개가 처진 농장 안은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후추묘목들이 자라고 있었고, 또 다른 하우스엔 기다란 나무버팀목을 타고 2~3미터 가까이 올라간 후추나무들이 마치 군대열병식을 하듯 길게 늘어서 있었다.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

농장 관계자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후추를 기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소 3년을 길러야 수확을 할 수 있는 작물이기에 아직 제대로 열매를 보기엔 좀 이른 시기였다. 농장에서 직접 기르고 수확한 후추열매를 맛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나라 농업인들이 먼 캄보디아까지 와 후추를 재배하는 모습을 보니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관계자는 향후 지금보다 세배나 넓은 1,000헥타르까지 농장규모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햇볕에 검게 그을린 사람들의 얼굴과 팔뚝에선 그동안 겪었을 고생과 땀의 흔적이 역력했다.

▲ 후추는 단일품종으로 후추 열매의 숙성도와 가공방법 등에 따라 검은 추후, 붉은 후추, 흔 후추 등으로 분류된다. (사진 박정연 재외기자)

세계사를 바꾼 향신료, 그 이름은 ‘후추’

후추는 유럽과 미주 등 서구 식단에서 없어선 안 될 필수 향신료이지만, 아시아지역에선 그만큼 대접을 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 음식에서도 별반 인기가 없다. 고추가룻에 밀려 쓰임새도 적다. 고작해야 설날 떡국이나 설렁탕 또는 스테이크 등 고기음식의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종종 쓰일 정도다. 그렇다보니 후추 맛을 제대로 아는 이들도 한국에선 드물다. 후추의 종류는 물론이고, 후추의 역사를 비롯해 후추에 대해서도 아는 이가 적다.

이 참에 후추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후추의 원산지는 인도 말라바 해안이다.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후추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지나 인도를 갔다. 그 뒤를 이어 콜럼버스도 대서양을 건너 인도를 가려다 신대륙을 우연히 발견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작은 국가 베니스는 후추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세계무대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다. 금이나 진주와 맞바꿀 정도로 워낙 귀하고 비싸 ‘검은 황금’이라 불리운 시절도 있었다.

후추로 인해 국가 간 세력지형이 바뀌었을 정도다. 후추가 세계역사를 바꾼 향신료였다는 사실에 대해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후추의 인기가 떨어진 건 불과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다. 생산지가 인도를 벗어나 아프리카와 남미, 동남아까지 퍼져 나가 대규모생산이 가능해지자,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서민들의 식탁위에도 후추가 올라갈 수 있었다. 불과 100년 전의 일이다.

후추는 콜럼버스가 서인도에서 발견한 고추와 달리 단일품종이다. 덩굴성 식물로 수령은 최대 40년이지만, 대략 15년 정도까지 경제적인 재배생산이 가능하다. 가공방법과 숙성여부 등에 따라 검은 후추(Black Pepper), 붉은 후추(Red Pepper), 흰 후추(White Pepper)로 나뉜다. 푸른 후추열매를 건조해 만든 검은 후추는 후추의 향과 맛이 매우 강하고, 레드 페퍼는 잘 익은 숙성된 붉은 열매를 건조해 숙성된 맛이 난다. 흰 후추는 푸른 후추를 살짝 뜨거운 물에 데친 뒤 건조해 껍질을 벗겨낸 제품으로 후추 고유의 부드러운 풍미를 느낄 수 있다.
 
▲ 품질좋은 검은 후추를 골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캄보디아 현지인들의 모습. (사진 박정연 재외기자)

유럽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캄보디아산 후추를 아시나요?

전 세계에서 연간 생산되는 후추의 양은 45만 톤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웃나라인 베트남이 전 세계 생산량의 거의 1/3을 차지한다. 캄보디아 연간 생산량은 18,000톤 정도다. 농장규모는 6,400헥타르 정도로 크지 않다. 하지만, 캄보디아 산 후추는 품질이 좋기로 국제시장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서구미식가들도 캄보디아 산 후추를 최고로 친다.

특히, 해안에 인접해 적절한 햇빛과 배수와 통풍이 잘되는 남부 캄폿에서 생산되는 후추는 그 맛과 품질이 매우 뛰어나 거의 전량 유럽 등지에 수출된다. 하지만, 캄폿 후추는 생산량이 연간 80톤 정도에 불과하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다보니 늘 비싸게 거래된다. 유럽에 수출되는 지리인증표시(GI)를 받은 캄폿산 검은 후추의 킬로그램 당 가격은 금년 8월 기준 15불이며, 붉은 후추는 25 달러, 흰 후추는 손이 많이 가는 만큼 가장 비싼 가격인 28 달러에 거래된다.
 

▲ 심은 지 2년차가 된 어린 후추나무의 생육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김원진 대사. (사진 박정연 재외기자)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후추는 가격이 훨씬 저렴한 편이다. 최근에는 가격이 더 떨어져 kg당 4~5불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캄폿산 후추와 비교해 품질과 맛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후추맛을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솔직히 캄폿산과 타 지역 후추의 맛을 구별하기란 힘들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캄폿산 인증마크가 없이 거래되는 가짜 캄폿산 후추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캄보디아에서 생산된 후추중 일부는 한국으로도 팔려나간다. 한 후추산업 전문가는 연간 3천톤에서 4천톤 가량의 캄보디아 산 후추가 오뚜기 등 국내유명식품회사에 공급된다고 얘기했다.
 
▲ 캄보디아산 후추는 유럽에 거의 전량 수출될 만큼 인기가 높다. (사진 박정연 재외기자)

캄보디아산 후추의 국제적 명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캄보디아의 후추재배지도 갈수록 느는 추세다.

이날 전시를 겸해 판매된 트봉크멈주 머멧에서 생산되었다는 검은 후추 한 봉지를 구입했다. 요즘 기자도 그 동안 몰랐던 통후추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검은 후추를 몇 알 씹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후추 가루 맛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게다가 후추 특유의 매콤한 향이 혀끝을 감쌌다.

고기를 굽거나 스테이크에 곁들여 나오는 캄보디아산 통후추의 알싸한 맛은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인들이 목숨을 걸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 후추를 찾아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연중 무더운 날씨와 싸우며 캄보디아에서 후추를 재배생산하는 한국농업인이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박정연 재외기자)

더위와 싸우며 열심히 후추 기르는 자랑스러운 한국인들

북동부 몬돌끼리주 후추농장을 관리하고 있는 한국인 농업인은 킬로그램 당 최소 4불 수준만 유지한다면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급이 늘어 혹시 시장가격이 떨어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자신감에 찬 그의 표정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수확이 시작되면 자체 브랜드도 만들고 국내 공급뿐 만 아니라, 유럽 등지에도 수출할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고 밝혔다.

후추농장이 있는 몬돌끼리에서 프놈펜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변으로 한국후추농장을 소개하는 대형 간판들이 눈앞에 보였다 사라지길 수도 없이 반복했다. 간판 가운데 그려진 자랑스러운 태극기 문양도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인도차이나반도 먼 나라까지 날아와 농업의 꿈을 일구며 살아가는 우리나라 농업 기업들과 교민농업인들의 의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캄보디아에서 펼치는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노력이 부디 성공하길 캄보디아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계속 응원하기로 하며 취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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