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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수 양제의 고구려 침공 - 사상 최대의 전쟁수 침공군 113만 명, 요동성과 평양성 동시 공격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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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5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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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1,405년 전, 수 양제는 수 문제의 패배를 일거에 설욕하고자 전무후무한 113만 대병력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다. 3차례 큰 전쟁을 벌였는데, 제1차는 수나라 수군이 패강(대동강)까지 침공해서 벌어진 전쟁으로 ‘패강 전쟁’이라 한다. 제2차는 을지문덕과 수나라 육군이 살수에서 싸운 '살수 전쟁'이고, 제3차는 만주 요동성에서 두나라가 총력전을 벌인 '오열홀 전쟁'이다.

수 침공군 113만 명, 요동성과 평양성 동시 공격

기원 612년 1월 수 양제는 113만 병력을 24군으로 편성해 수륙 양 방면으로 나누고 육군을 또다시 양 부로 나누었다. 육군 제1부는 어영군과 그 외의 10여 군으로 구성해 양제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요수를 건너 요동의 각 성을 치기로 했다.

육군 제2부는 좌익위대장군 우문술이 거느리는 9개 군으로 구성해서,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을 참모장으로  요수를 건너 고구려의 평양으로 곧장 공격하기로 했다.

수군 10만 명은, 수군총관 래호아와 부총관 주법상이 군량을 실은 배들을 거느리고 해로를 따라 대동강으로 들어가서 육군 제2부 사령관 우문술과 합하여 평양을 협공하기로 했다.

수 양제의 육군 전체는 행군하는 동안 먹을 양식만으로 짐을 가볍게 하고, 목적지인 요동성 및 평양성에 도착한 뒤에는 수군이 배로 운반해온 군량을 충분히 먹으면서 두 성을 포위 공격하는 지구전을 펴서 고구려를 항복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고구려의 방어와 작전 계획

고구려의 방어 전략은 기원 100년 6대 태조대왕 때 사용한 전략이다. 당시 왕자 수성이 고구려 총사령관으로 한나라 군대의 후방을 공격해 군량 공급을 끊고 침공군을 굶주리게 해서 격파했다. 그 이후 고구려에서는 수백 년 동안 북방의 침입을 방어할 때마다 전래의 계책을 써서 반드시 승리하였으며, 역대 중국의 침입자들도 이것을 가장 경계했다.

고구려는 총병력 30여만 명 중에서 남방의 백제와 신라를 경계하는 데 몇 만 명을 배치하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20여만 명이 수에 대항하여 싸울 병력으로 배치됐다. 수군 원수는 왕의 동생 고건무였으며, 육군 원수는 을지문덕이었다. 요동성 주변지역의 백성과 식량은 모두 성 안으로 옮겨지고 수비 위주의 작전명령이 전군에 내려졌다.

수 육군 우문술은 평양으로 진격

을지문덕이 수나라 군사들을 아군 지역으로 깊숙이 유인하고자 요하 서북의 군사들을 철수시켜 요하를 지켰다. 그해 3월에 수나라 군사들이 요하에 이르러 강 서편 언덕을 따라 상하 수백 리에 걸쳐 진을 쳤고, 각 군단의 군장과 군기는 햇빛에 울긋불긋 비쳤다.

이를 보고 을지문덕이 사전에 수립해 놓은 작전계획에 따라 거짓 패하여 군사를 후퇴시키니, 수 양제가 전군을 거느리고 요하를 건너왔다.

기세가 오른 수 양제는 휘하 어영군과 좌익위 대장군 등으로 하여금 요동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게 했고, 좌둔위 대장군 토우서 등 10여 군으로 하여금 그 부근의 각 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게 했다. 한편 좌익위대장군 우문술과 우익위대장군 우중문 등 9개 군으로 하여금 을지문덕을 추격해서 살수를 건너 평양성을 치도록 했다.

제1차 패강 전쟁에서 수군 궤멸

이에 앞서 수군총관 래호아가 강(장강)‧회(회하)의 수군 10여만 명을 거느리고 군량선을 보호하면서 동래(연대)에서 출발하여 창해(발해)를 건너 패강(대동강) 입구로 들어왔으므로, 영양왕의 아우 고건무가 비밀리에 수군 장졸들을 구석진 항만에 감추어 두고, 평양성 아래의 인가에는 재물과 돈을 떨어뜨려 놓고 수나라 군사들이 상륙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래호아가 정예병 4만 명을 뽑아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 성 밑으로 돌진하니 사람들은 모두 피난가고 없고 여기저기 재물과 돈이 흩어져 있었으므로, 군사들이 재물과 돈을 노략질하느라 대오가 무너져 흩어졌다.

이때 고건무가 결사대 5백 명을 뽑아 성곽 안의 빈 절로부터 돌격하여 수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놀라서 도망하는 수나라 군사들을 추격하자, 각처의 매복했던 고구려 수군들도 일시에 공격했다. 패주하는 수나라 군사들은 앞다투어 배를 타려다가 서로 짓밟아서 죽은 자가 셀 수도 없었으며, 군량선들도 모조리 깨지고 바다 속으로 침몰됐다. 수군총관 래호아는 겨우 단신으로 작은 배를 타고 도망했다.

수군총관 래호아 단신 도주

군량선들이 이미 전부 깨지고 침몰해 버렸으니 그 후에 평양으로 침입해온 우문술 휘하의 육군 대병력들은 무엇을 먹고 싸우겠는가. 고구려는 패강 승전으로 이미 필승의 위치를 차지했다.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전공의 차례를 매긴다면 수군사령관 고건무가 을지문덕보다 앞선 제1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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