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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우리말로 깨닫다] 스승의 스승을 그리며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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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5  11: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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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요즘은 스승이라는 말을 듣기도 어렵고 찾기도 어려운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국어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유창돈 선생님은 1966년 10월에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1966년 8월생이니 이승에서의 삶은 두 달 정도 겹치는 듯하다. 아무튼 전혀 뵐 기회가 없었음이 아쉽다. 나는 요즘에도 선생님이 쓰신 <어휘사연구>와 <이조국어사연구>를 늘 옆에 두고 공부하고 있으며, 어원을 공부할 때면 <이조어사전>을 제일 먼저 뒤진다. 실로 배운 적은 없으나 스승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게 느낀다.

유창돈 선생님의 <어휘사연구>는 돌아가신 후에 출판된 책이다. 그래서 머리말 대신 추모의 글이 올라와 있다. 그 중에서 조병화 선생께서 쓰신 추모의 글은 그야말로 절절하다.

전화가 제대로 없던 시절에 유창돈 선생님의 갑작스런 부고를 받고 그 날 유 선생님 수업에 온 학생들에게 전달하러 가는 조병화 선생님의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먹먹하다. 칠판에 휴강이라는 글을 쓰고는 오늘부터 영원히 휴강이라고 말하며 소리 내어 울었다는 내용에서는 시인의 감성 이전의 감정이 느껴진다. 학생들은 마음이 어땠을까? 50년 전의 교실 모습이 그려진다. 울음바다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나에게 어원과 우리 문화를 보는 눈을 가르쳐 주신 서정범 선생님은 유창돈 선생님의 제자이다. 선생님께서 유창돈 교수님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너무 배고파서 수돗물을 마시고 있는 서 선생님을 보신 유창돈 교수님이 밥을 사주신 이야기였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수돗물을 들이키고 있는 제자의 모습을 본 선생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 주린 모습을 들킨 제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선생님에 이끌려 식당에 갔을 때 그 고마움과 미안함은 어땠을까? 그래서였을까? 서정범 선생님은 제자들과 식당에 가면 늘 선생님께서 계산을 하셨다. 내가 돈을 더 많이 버니까 낸다고 하셨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도 제자들과 식사를 할 때면 무조건 내가 내려고 한다. 선생님께 배운 일이다.

딱 한 번 서정범 선생님께 식사를 대접한 일이 있다. 2008년 말에 나는 미국으로 연구년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뵈었다. 이미 그 때는 선생님께서는 편찮으셔서 오래 사시기 어려움을 알고 있었다. 제자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시려 했을까? 그 날은 계산하겠다고 나서는 제자를 말리지 않으셨다. 떠나는 제자를 향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데도 손을 흔드시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유창돈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 서정범 선생님의 글이 생각난다. 말투가 생각난다.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한 유창돈 선생님이지만 말투와 관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선생님의 선생님은 곧 나의 선생님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훗날 내 글에서 서정범 선생님을 느끼고, 유창돈 선생님을 기억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유창돈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연세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경희대학교 강의는 많이 맡고 계셨다. 그 전에는 경희대와 연세대의 교수를 겸직하고 있었다. 요즘에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그 때는 그런 일이 흔하였던 듯하다. 좋은 선생님이 있다고 하면 불원천리 찾아가서 수업을 듣는 청강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찾아가야 하는 분이다. 그리고 찾아가고 싶은 분이어야 한다.

유창돈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 경희대학교에 박사논문을 제출한 상태였다고 한다. 갑자기 돌아가셨기에 학위를 마무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학교나 유족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박사학위를 받고도 남으실 분인데 심사를 받지 못한 상태이니 5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학위를 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께서 좋아하실까 하는 염려도 있지만 제자의 제자로서 스승의 스승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면 혹시 기쁘게 받지는 않으실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스승이라는 말의 애틋함을 떠올리면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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