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민이야기] 하와이 이민자들 삶의 버팀목, 교회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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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민이야기] 하와이 이민자들 삶의 버팀목, 교회와 학교
  • 박용운(한국이민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승인 2017.03.0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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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자료 소개 시리즈…④

이역만리 먼 곳,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는 곳에서 하와이 이민자들에게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곳은 교회와 학교였다. 하와이 이민자의 상당수가 기독교 신자였기에 교회는 한인 이민공동체의 구심점이자 안식처로서 일찍부터 기능했다. 또한 사탕수수 농장의 낮은 임금 때문에 온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 공동으로 노동을 해야 하는 조건에서 2세들의 교육을 맡아주었던 민족학교 역시 공동체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교회건립은 감리교가 가장 빨랐는데, 최초이민자의 절반이상이 감리교단인 인천 내리교회 출신인 점이 작용했다. 1903년 6월 14일 하와이 모쿨레이아 농장에서 전도사 김이제의 주례로 첫 예배를 보았으며, 같은 해 11월 10일 호놀룰루에 사는 동포들이 안정수, 우병길을 대표로 정하고 감리교회 감리사 피어슨을 만나 홍승하 목사의 지도로 '한인전도회'를 발족했다.

▲ 한인 감리교 부인전도회 사진 (자료 한국이민사박물관)

이것을 시작으로 1905년에는 교회와 예배당을 갖추게 됐다. <한인 감리교 부인전도회 사진>(사진 1)은 1920년대 촬영한 것으로, 한인전도회가 분화·발전한 양상을 보여준다. 사진 속 여성들은 동시대 조선의 여성과는 다른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이들은 한국여성 특유의 강인한 생활력을 발휘해, 나이 많은 남편과 자녀들 사이의 가교로서 한인공동체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감리교단 외에도 한인 성공회와 한인 구세군이 활발한 종교활동을 펼쳤으며, 1918년말 이승만이 한인기독교회를 설립하자 많은 교인들이 한인기독교회로 모였다. 이에 따라 감리교회와 한인기독교회는 각각 하와이 여러 지방에 교회를 설립하면서 양대 종교 조직으로 경쟁하며 발전했다.

이와 같이 교회를 기반으로 한 한인공동체에서 후속세대인 자녀들의 교육은 중요한 관심사였다. 이미 현지 언론에 한인 이민자 자녀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좋지 않은 행실을 보인다는 기사가 소개될 정도로 당시 1.5세대에 해당하는 이민자 자녀들의 교육문제는 한인공동체의 중요한 문제였다.

이에 이민자들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민족지도자들은 한인학교 설립을 통해 초등교육 및 민족교육을 실시해 지도력을 확보하려고 했다.

▲ 호놀룰루 한인학원 사진 (자료 한국이민사박물관)

<사진 2>는 1915년 하와이 호놀룰루 한인학원에서 이승만을 비롯한 교사들과 학생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 위에 써진 ‘호항’은 호놀룰루를 뜻하는 한자식 명칭이다. 1913년 박용만의 초청으로 하와이에 건너간 이승만은 한국 아동들을 수용하고 있는 한인 감리교회 부속학교를 인계받아, 다른 인종의 아이들을 배제하고 한글과 한국역사를 가르치는 한인학원으로 변경하고자 했다.

이에 감리교단 측과 대립한 이승만은 1916년 감리교 선도부를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한인학원을 운영했다. 나아가 1918년에는 한인기독교회 및 학교를 설립해 감리교와는 완전히 손을 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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