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큰절을 받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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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큰절을 받은 사람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7.2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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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학교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사를 할 때 점점 서로에게 절을 하지 않는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앞으로 절은 전통적인 인사로만 남게 될 듯하다. 설날이나 제사가 아니라면 절을 할 일도 없어졌다.

전에는 집안 어른을 만나거나 오랜만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려야 할 때는 반드시 절을 했었다. 먼 길을 떠날 때도 절을 했다. 그래서인지 절에는 경건하고 애절한 마음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는 벽장 속에 있는 병풍처럼 가끔씩 꺼내보는 유물이 된 느낌이다.

이미 ‘절이라도 해야겠다.’나 ‘큰절을 하다’라는 말이 관용구처럼 쓰이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 표현의 이해를 위해 더 자세한 설명이 더 필요하리라 본다. 절은 고개를 숙이는 목례나 인사법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절에는 특별한 느낌과 의미를 담게 된다. ‘절이라도 해야겠다.’는 말은 고마움을 표시해야겠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절을 하는 행위를 고마워하는 행위로 본 것이다. 큰절을 한다는 말은 고마움의 표시와 함께 존경의 의미도 담고 있다. 누구에게 큰 절을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원래 인사라고 하는 신체언어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보다는 내가 당신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악수’도 내 손에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는 행위였고, 고개를 숙이는 인사도 공격의 의사가 없고, 복종하려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약자일수록 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절을 하였다. 상대의 공격 앞에서 무방비인 채로 나를 보이는 것이 더 예의를 갖춘 행위가 된다. ‘절’을 봉건적인 행위라 보고, 신분제의 악습으로 보는 것은 이런 태도에 기인한다. 

하지만 절은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인도에서의 인사는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드리는 인사라는 생각이 있다. 실제로 많은 종교에서는 서로를 하늘이라고 여기고, 서로를 부처라 여기며 인사를 한다. 인사는 상대에 대한 예의면서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이기도 하다. 상대가 약자이든, 어린아이든 깊고 따뜻한 인사를 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큰절을 하는 모습은 상대에 대한 지극한 존경을 나타낸다. 존경은 상대를 하느님으로 생각하는 마음이다.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에 보면 ‘예경제불원(禮敬諸佛願)’이라는 소원이 나온다. 세상의 모든 부처께 예의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을 부처라고 한다. 따라서 모든 중생을 부처로 여기고 예의를 갖추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학의 박성배 선생님은 예경제불원을 이야기하면서 ‘절’은 수도의 순간이라고 갈파하고 있다. 나는 이 말씀 속에서 ‘큰절’의 경건함을 느낀다.

지난 7월 15일에 재미한국학교협의회의 학술대회가 덴버에서 있었다. 한국학교 관련 선생님 600여 명이 모인 아름다운 행사였다. 기조 강연자로 오신 전헌 선생님께서는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옛날에는 임금님께 말씀을 아뢰기 전에는 큰절을 하고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그 말씀을 하시고는 우리를 향해 큰절을 하셨다. 모두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맞절을 하거나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였다. 서로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날 강연을 듣던 한국학교 선생님들은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 전헌 선생님은 우리말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가장 귀한 사람으로 대접하여 주신 것이다. 그날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든 선생님은 임금님이 되었다. 강연의 내용도 깊은 감동이 있었지만, 많은 선생님들은 두고두고 선생님의 큰절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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