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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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을 생각하며
  • 이병우 소장
  • 승인 2015.08.3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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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우 중국 중부지역 경제문화 연구소장(칼럼니스트)
  일촉즉발의 준전시(準戰時)상황으로까지 번지던 남북 간의 긴장이 극적인 합의로 다시 평상 수준으로 돌아갔다. 노자(老子) 도덕경에 “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이란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회오리바람은 아침이 지나도록 불지 아니하고, 소낙비는 하루 종일 내리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남북의 대결 국면이 마치 회오리바람과 소나기처럼 갑자기 불어 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라앉고 말았다. 그러나 지나간 바람과 한바탕 난리를 치며 쏟아졌던 소나기는 언제든지 구름이 몰려들고 대기의 습도가 올라가는 여름 낮에는 또 올 수가 있다. 물러간 것이 아주 끝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긴장의 며칠을 보내고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 여러 찬반의 의견이 있었던 열병식 행사에도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아마도 우리는 TV를 통해서 중국의 국가 주석과 함께 남북한의 대표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국제 사회의 역학관계는 이렇게 묘하고 아이러니한 변화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이번 전승절(戰勝節) 기념행사를 아주 요란하고 화려하게 준비하는 중이다. 중앙정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국빈을 초대하고 북경의 오염된 하늘을 맑게 하며 새로운 신무기를 선보이는 등, 아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방중(訪中)과 열병식 행사 참석은 그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중국인은 상대방을 초청하거나 대접 할 때 엄청난 정성을 기울인다. 중국인에게 제대로 접대를 받아 본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 정도로 중국인들의 접대 기술은 뛰어나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만이 접대의 전부는 아니다. 최고의 접대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관계에서 나타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은 그런 방면에 경지가 아주 높은 고수들이다. 이런 기질은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중국인의 오랜 체면 문화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중국인들에게 체면은 거의 생명과 같다. 체면을 잃어버린 사람은 도저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어쩌면 그 사람의 모든 사회생활은 이미 생명력이 소실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체면을 중시한다. 그래서 이번 박 대통령의 열병식 행사 참석은 중국 사람들의 체면을 세워주는 일일 수도 있다.

  반대로, 굳이 중국의 초대를 거절하고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 것은 중국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된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자기의 체면을 세워준 상대방에 대한 은혜를 결코 잊지 않는 기질도 있다. 언젠가는 그 신세를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교는 실리와 명분을 모두 취해야 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하지만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실리와 명분을 모두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총칼을 맞대고 싸우는 전쟁보다 오히려 더 냉엄한 현실이 외교 전쟁일 수 있다. 이번 대통령의 방중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남북의 제2차 준전시의 외교 전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휴전선 비무장 지대에서의 도발 사태와, 이어진 우리의 강경 대응 그리고 며칠 밤을 새우며 이끌어낸 합의 과정이라는 회오리와 소나기가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다시 일기 시작한 셈이다. 우리가 중국의 체면을 세워준 것은 외교적 전략이지만 북한과의 대결은 우리의 현실이고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가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었다고 중국이 우리 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은 아주 큰 오산이다. 중국이 그렇게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삼국지(三國志)를 보면 유비(劉備)가 드디어 남의 집 더부살이를 끝내고 형주(荊州)에 자리를 튼 다음,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인 서촉 땅을 정벌하러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유비는 한실(漢室)의 같은 종친(宗親)인 서촉의 주인을 차마 자기 손으로 공격하기에는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이에 유비를 따라 나섰던 모사(謀士) 방통(龐統)은 유비에게 간곡하게 정벌을 청하면서 이렇게 말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약한 자는 아우르고 어리석은 자는 치며 거스르는 자는 빼앗고 따르는 자를 지켜주는 것은 은(殷)나라 탕왕(湯王)이나 주(周)나라의 무왕(武王)도 하신 바였다”

  중국의 전략과 전술은 이토록 다양하고 주도면밀한 데가 있다. 중국인의 체면문화는 그들이 전투에서 사용하는 전략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번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으로 중국이 우리에게 진 빚은 언젠가 적당한 선에서 우리의 체면을 세워주는 선으로 갚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 보다 약하고 어리석거나, 중국의 뜻을 거스르면 중국의 태도는 돌변 할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이 러시아의 전승절 행사 방문을 취소하고 이번 중국 행사에 측근을 보내는 이유는 그 만큼 북한이 중국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는 이렇게 고난도(高難度)의 숙제가 놓여있다.

  그래서 우리가 중국과 미국에 기대고 의지하는 전술에는 한계가 있다. 오로지 남북한 당사자들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자주 해야 한다. 가끔 회오리바람(飄風)과 소나기(驟雨)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너무 자주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좋은 일이 아니다. 부디 박 대통령의 이번 방중(訪中) 효과가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부디 남북 화해와 통일의 기초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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