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오성취루(五星聚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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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오성취루(五星聚婁)
  • 이형모 발행인
  • 승인 2015.08.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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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취루 - 3,748년 전 천문기록

 

▲ 이형모 발행인

 이암이 편찬한 단군세기에 기록되기를, “열세 번째 단군인 흘달 50년에 다섯 행성이 ‘루’ 별자리에 모였다.(五星聚婁)” 단군조선 13세 흘달단군 50년은 무진년이고 BC 1733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3748년 전이다. 다섯 행성이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다.

 단군세기의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10세 단군 노을 35년(BC 1916년)에 처음으로 별을 관측하는 곳을 설치했다.” 처음 천문대를 설치한 때로부터 183년 후 “오성취루”의 기록이 등장한다.

  많은 강단사학자들은 ‘단군세기’가 1911년에 출간되었고 여러 가지 신뢰하기 어려운 기록들이 섞여 있어서 ‘위서’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에 있는 ‘오성취루’라는 기록은 동서고금에 어떤 사서에도 없는 진기한 기록이다.

  이 기록의 과학적 확인을 시도한 천문학자 ‘박창범 박사’가 지은 책,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에서 ‘오성취루’를 설명한 부분을 아래에 원문대로 소개한다.

 역사 기록을 천문학으로 검증

“나는 이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BC 1733년을 전후로 약 550년간의 시간 범위에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다섯 행성의 위치를 계산해 보았다. 그 결과 다섯 행성이 하늘에서 매우 가깝게 모이는 때는 (1) BC 1953년 2월 25일 새벽(2.3도 이내)과 (2) BC 1734년 7월 13일 초저녁(10도 이내)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기록에 나오는 BC 1733년의 현상과 시점상 가장 근접한 것은 후자이다. 계산으로 확인된 BC 1734년의 행성 결집은 해질 녁에 태양으로부터 금성 목성, 토성, 수성, 화성이 늘어서고 초생달도 함께 모여 장관을 이룬다. 기록에 쓰여 있는 BC 1733년과 비교하면 불과 1년 차이로 실제 현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1년이란 차이는 왜 벌어지는 것일까? 행성이 실제로 결집했던 해와 1년의 시간차로 기록에 나타난 것은 단지 우연일까? 아니다. 이를 우연히 맞아떨어진 조작으로 보기는 힘들다.”
 

▲B.C. 1734년 7월 13일 초저녁 서쪽 하늘을 인왕산 위로 재연한 모습. 오른쪽부터 금성, 목성, 토성, 수성, 화성이 초생달과 함께 늘어서 있다.(사진='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박창범 지음.김영사.2014년에서 발췌)

 “지난 4000년간 다섯 행성들의 위치를 계산해 보면 이들이 10도 이내로 모이는 일은 평균 250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나는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만약 이 기록이 조작을 위해 임의로 책에 삽입되었다면 실제 현상이 있었던 시점과 단 1년 차이로 우연히 가까울 확률은 0.007이 된다. 조작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오행성이 모이는 위치를 계산해 보니 루성(양자리)이 아닌 그로부터 약 130도 떨어진 ‘바다뱀자리’ 근처였다. 행성 결집 위치가 다른 것이다. 그러나 서기전 18세기에는 아직 동양에서 28수의 이름이 확정되기 훨씬 이전이다. 따라서 기록에 적힌 오행성의 결집 위치는 후대의 해석임이 명백하다.”

  “기록된 행성 결집의 위치가 후대에 이르러 명명되는 과정에서 이름상의 혼란이 빚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에 나오는 오행성 결집 기록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행성 결집이라는 사실 자체에 있으며, 결집의 위치는 결집 사실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내용이다.”

고조선 시대의 연대 오차  

“만일 행성 결집 기록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왜 실제 현상과 조금 다른 해에 기록되었을까? 그 까닭 중에 하나는 단군 조선의 개국 년이 불확실한 데에 있다. 개국 년은 세 가지 설이 있다. 요 원년(BC 2357년), 요 25년(무진년, BC 2333년), 요 50년(BC 2308년) 설이다.”

  “정부는 이 중 두 번째를 택하여 1949년에 제정된 ‘국경일에 대한 법률’에 따라 단군왕검의 개국년월일을 BC 2333년 음력 10월 3일로 정하고, 이 날에 해당하는 양력일을 찾을 수 없어 대신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지정하여 단군의 개국을 경축해 오고 있다.”

  “위에서 여러 단제들의 재위 년은 단군왕검 1년을 BC 2333년으로 가정하여 계산했는데, 단군왕검 1년이라는 해에 49년의 불확실성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서력 환산의 문제로 인해 기록과 실제 현상과의 일치가 수십 년까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이런 까닭에 단군조선 시대의 기록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행성 결집’과 같이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로 ‘수퍼 컴퓨터’가 획기적으로 발전하여 천문학도 더 먼 거리, 더 먼 옛날을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천문학자 박창범 박사의 우리역사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과 탐구정신 덕분으로, 3748년 전 ‘오성취루’ 현상에 대한 기록의 진실 여부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고려 공민왕 시절 문하시중(국무총리)을 지낸 대학자 ‘이암’이 편찬한 ‘단군세기’도 오성취루의 천문학적 검증으로 새롭게 ‘진실한 역사서’임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제는 강단을 책임지는 역사학자들도 아집을 내려놓고 높으신 조상들의 과학정신과 진실한 역사기록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진실한 한국고대사’를 찾아서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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