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대 칼럼] 죽은 적(敵)은 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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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대 칼럼] 죽은 적(敵)은 적이 아니다!
  • 신성대 동문선 대표
  • 승인 2015.04.1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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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기다리는 한국전쟁 전몰 북한군 영혼들

  지난 11일 토요일, 경기 북부 파주 ‘적군묘지’를 찾아 위령하고 회원들과 함께 묘역 주변에 화초와 잔디를 심고 꽃씨를 뿌리고 왔다. 근처 적성면 설마리 영국군 전적비와 함께 정기적으로 참배하는 곳이다.

  전쟁에 무슨 선악이 있겠는가? 전사한 장병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그들에겐 그 순간까지가 그들의 역사다. 적군이건 아군이건, 흉악범이든 거룩한 성자이든, 의로운 사람이든 비겁한 사람이든 그 죽음 앞에선 경건해야 하는 것이 문명인의 도리. 어찌 인간뿐이겠는가? 하찮은 짐승이나 벌레, 심지어 풀 한 포기라도 생명이 있는 그 모든 것의 죽음에 숙연해 지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심정일 것이다.

  하여 죽은 적(敵)은 없다. 죽은 자는 더 이상 적이 아니다. 함께 싸운 우리일 뿐이다. 그들이 죽었기에 우리가 살아있는 거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적이라 해도 존중하고 예를 갖추어 주는 것이 참다운 무혼(武魂).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고, 총부리를 내릴 수도 없는 대치상황이지만, 어쨌든 과거는 과거다. 원치 않은 어쩔 수 없는 전쟁이었다 해도 그건 그것대로 우리 역사다. 수치스러운 전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

  한국전쟁 정전 60년에 즈음하여 국군유해발굴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굴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는 따로 휴전선 근처 북녘을 바라보는 외진 언덕에 임시 안장하고 있다. 이름하여 ‘적군묘지’라는 곳이다.

  수년 전 필자가 쓴 칼럼을 계기로 도의(道義)를 지닌 민간 모임이 만들어져 이 쓸쓸한 묘지를 돌보며, 산야에 흩어져 떠도는 북한군과 중국군 전몰용사들의 영혼을 위령하는 행사를 해오고 있다. 이름 하여 <북중군묘지평화포럼>(회장:권철현 전 주일대사)이다.

  처음 이곳은 1968년 1월 21일 청와대를 습격하려 내려왔다가 사살된 ‘김신조부대’로 알려진 북한 124군부대 무장공비들의 가묘가 있던 곳이다. 이후 울진 삼척 등에서 사살된 공비들과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중 함께 출토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를 이곳에 임시 안장하면서 지금과 같은 묘역이 만들어졌다. 제1묘역의 계급과 이름이 있는 몇 기는 무장공비들로 우리 정부에서는 북한으로 돌려보내려 했으나 침투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북한이 받지 않고 있다. 결국 남북 양쪽에서 버림받은 분단의 희생자들이다. 통일이 되면 그 가족들이 찾을 것이다.

▲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및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
  예전 이곳 묘지는 하얀 나무막대 묘비만 세워져 있었고, 봉분(封墳)도 아기 묘처럼 작았다. 군부대 관할인데다 장소도 인근 마을 사람들조차 모를 정도로 후미진 언덕 밑에 감춰지듯 방치되어 있었다. 하여 포럼에서  "향후 적군묘지가 대북·대중 관계 개선의 가교(架橋)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묘지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고, 국방부가 이를 받아들여 2012년 가을 묘비를 화강암으로 바꾸고 주차장과 진입로를 만들어 재단장했다.

  이런 계기로 2013년 6월 30일 중국을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유해송환을 제안하게 되었고, 2014년 3월 28일 중국으로 인도되어 선양(瀋陽) ‘항미원조열사능원(抗美援朝烈士陵園)에 안장되었다. 지금은 북한군과 무장공비들의 유해만 안장되어 있다.

  이곳 적군묘지는 세계 유일하다. 북한은 물론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솔루션으로서의 적군묘지, 평화통일의 시작점으로 삼기를 기원한다. 이들 영혼들도 그러길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 재단장하기 전 적군묘지(제2묘역)의 본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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