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나쁘다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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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나쁘다와 밉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5.03.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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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나쁘다와 밉다는 같은 글자입니다. 우리말에서가 아니라 한자어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자의 나쁠 ‘악(惡)’자는 미워할 ‘오’자로 읽히기도 합니다. 즉 같은 글자에 두 가지 발음과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자어에는 같은 글자가 다른 소리,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글자들을 전주 문자(轉注文字)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전주 문자는 왜 생겨난 것일까요?

  한글은 소리글자이므로 같은 글자가 다른 발음이 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물론 같은 소리글자라고 하더라도 영어 같은 경우에는 같은 철자를 다르게 발음하는 경우들도 나타납니다. ‘read' 같은 경우는 두 가지로 발음할 수 있습니다. 앞의 한자어는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서로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단지 한자만 같을 뿐 소리도 의미도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전주문자들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줍니다. 왜 서로 다른 단어들을 한 글자로 표현하였던 것일까요? 예를 들어 ‘내릴 강(降)’과 ‘항복할 항’은 같은 글자 다른 발음, 다른 의미의 전주문자인데, 아마도 자신이 낮게 된다는 의미의 ‘내리다’와 ‘항복하다’가 원래 같은 단어였는데 분화하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말의 ‘어리다’가 ‘어리석다’로 분화가 되거나 ‘슳다’가 ‘싫다’와 ‘슬프다’로 분화되는 예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주문자는 의미의 분화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을 글자의 모양은 변화를 주지 않은 채 유지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두 의미의 연관성입니다. 원래는 하나의 의미였거나 서로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 의미였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위의 예로 돌아가서 보면 ‘악하다’는 의미와 ‘미워하다’라는 의미는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까요?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는 ‘나쁜 것, 악한 것은 미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세상은 나쁜 것을 싫어하고, 나쁜 것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만 해도 훨씬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악의 유혹에 넘어가는가요?

  이런 전주 문자들을 앞에다 두고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글자의 의미를 통해서 나의 삶을 돌아보고, 뼈저리게 반성하고, 나아갈 지표들을 찾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언어와 문자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이고 사고입니다.

  즐거울 ‘락(樂)’ 자는 전주문자의 대표적인 글자입니다. 풍류, 음악이라고 할 때는 ‘악’으로 발음되고, 좋아한다는 의미로 쓰일 때는 ‘요’로 발음됩니다. 그래서 산과 물을 좋아한다고 할 때,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발음해야 하는 것입니다. ‘즐겁다’와 ‘음악’, 그리고 ‘좋아하다’의 세 의미는 서로 어떤 관련성을 갖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의 삶에 어떤 깨달음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궁금증을 안겨 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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