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2. '16'의 악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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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1막 - 2. '16'의 악동들
  • 김태진
  • 승인 2015.03.0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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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진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전 맨해튼한국학교장)
  동해의 학교 옥상에선 바다가 보였다. 나는 자주 옥상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시선을 저 멀리 바다에 던지면 되돌아오는 마음의 평안, 펼쳐진 넓은 바다만큼의 가능성과 희망…

  지금도 나는 무심의 눈으로 물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물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은 그 때의 버릇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1년을 기다려 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얻는 극성을 부리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교직 생활의 첫 고향인 동해에서의 추억이 늘 가슴 안에서 넘실거린다.
 
  학교 규모는 정말 작았다. 중학교 세 학급, 고등학교 6학급으로 총 9학급뿐이다. 나는 일반사회를 부전공 한 덕에 중1·2·3 사회, 중2·3 국사, 고1 정치경제, 고3 국사를 가르쳤다. 큰 학교의 선생님들은 한 번 준비해서 적어도 5번은 수업을 하는데 나는 수업의 반 이상은 매번 새로 준비해야 했다. 매일 새벽 2시까지 수업준비를 했지만 정말 행복했다. 내가 꿈꾸어 왔던 방식으로 수업을 하고, 학생들은 머리뿐 아니라 가슴, 온 몸으로 역사와 사회를 익혀 간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온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의 행복감. 그것이 주는 보람과 기쁨은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충만함이었다.
 
  중 3 부담임을 맡았다. 학급 인원이 16명으로 선진국 수준이다. 담임 선생님은 내가 학생들과 있는 것을 좋아함을 눈치채고 저녁 자율학습 감독을 나에게 맡겼고 나는 금방 아이들과 친해졌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가르치면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외치며 당시 유명했던 라디오 진행자 ‘이종환’씨 흉내를 내던 민철이, “선생님, 머리가 흐트러 졌어요…”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에 있는 큰 학급 거울을 내게 가져다 대던 은석이, “선생님, 콧구멍 크기가 달라요…”하며 제일 앞에 앉아 나를 올려다 보며 놀리던 자그맣던 성훈이,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살인청부업자’라고 해서 나를 섬뜩하게 했던 결손가정의 성웅이(성웅이는 결국 가출해서 더 이상 학교에서 볼 수 없었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안 있어 부부가 된 은철이와 영실이…
 
  유난히 똑똑하고 정이 많은 16 악동들과의 1년 생활이 꿈결같이 흘러가며 나의 첫 교사 생활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었고 이제 졸업을 남겨 두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같은 건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할 예정이었기에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서운함은 없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에서 내가 또 정치경제를 가르칠 테니까. 그러나...
 
  내가 일하고 있던 학교법인은 전국에 학교를 가지고 있는 규모가 제법 큰 재단으로, 매년 인사 이동이 있었다. 하여 2월 말이면 전근 문제로 학교가 들썩거렸다. 나는 1년 만에 서울 근교에 있는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모두들 수도권의 학교로 가기를 희망하지만 그렇게 빨리 가지 못했는데 1년 만에 가게 되니 선생님들은 내가 로비를 했다고 쑥덕대기 시작했다.
 
  ‘에고, 로비라니... 교장 선생님이 아침에 발표할 때까지 몰랐건만...ㅠ.ㅠ’
 
  정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더욱 편치 않은 것은 어느새 알고 찾아 온 아이들 때문이었다.
 
  “선생님 곧 가실 줄은 짐작했어요. 실력 있는 선생님은 시골에 오래 안 계세요. 모두 서울로 가 버려요. 그런데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몰랐어요…” 울먹이며 서 있는 아이들한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떠나고 싶진 않은데… 정말 그 때는 가족 곁으로 간다는 기쁨은 밀리고, 학생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죄책감에 동해에 남고 싶었다. 그러나 이 아이들과의 만남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내 생애 첫 제자들로서의 몫을 톡톡히 하며 계속 연결되었다.
 
  * 학생들 이름은 가명으로 했습니다.

  김태진 전 맨해튼한국학교장,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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