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에 촌놈이 살고 있었으니 그 이름 깜시기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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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에 촌놈이 살고 있었으니 그 이름 깜시기라 하였다"
  • 홍미은 기자
  • 승인 2014.12.11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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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상선 마다가스카르 한인회 회장

▲ 윤상선 마다가스카르 한인회 회장

세계의 변방,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 한국인 윤상선 씨가 살고 있다. 한국 교민은 대략 200여 명, 서로 잘 알아서 한편으론 한 식구 같이 살고 있다는 이곳에서 윤 씨는 마다가스카르 한인회 회장이기도 하고, ‘깜시기네 주막’을 운영하는 사장님이기도 하다. 윤 회장이 소개하는 마다가스카르는 ‘미지의 검은 대륙 아프리카 옆에 있는 섬나라. 국민소득 250불도 안 되는 나라. 지저분하고 좁은 도로, 골동품 같은 건물들과 자동차들, 전체적으로 낮은 경제 수준의 나라.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돈 많고 축구 잘 하는 나라라면서 다시 한 번 우러러 보는 나라. 한국에 비해 돈 값어치가 형편없이 낮은 나라’다. 이런 마다가스카르에 15년째 살아온, 살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젊을 때는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의대에 들어가서 의사가 됐는데 내 적성하고는 죽어도 안 맞는 거예요. 전문의 과정은 안 했어요. 대학만 나와서 바로 기초의학으로 해부학을 했어요. 진짜 피 냄새가 싫었기 때문에 피 안 나는 시체를 만져보자 하고 해부학을 전공했는데 이거 하다보니까 발기발기 찢어놓는 게 이게 무슨 짓인가 싶더라고요. 그리고 교수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년에 논문 1편을 단독으로 제출해야 했거든요. 그 논문을 쓰려면 실험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 순한 실험동물을 한 50마리에서 100마리 죽여요. 병을 만들었다가 다시 살려서 현미경으로 조사하는 거죠. 병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토끼가 끙끙 앓더라고요. 경과를 보려고 다가가면 토끼가 나를 알아봐요. 나한테 안 잡히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나중엔 토끼가 물더라니까요. 속이 너무 상해요. 내가 이 짓을 왜 해야 되나. 내 논문이 얼마나 인류에 큰 공헌을 한다고 그냥 매장되는 노문인데 내가 이걸 해야 하나 그런 회의감도 들고요. 한마디로 이건 내 팔자가 아니다 라고 결론 냈죠.”

자신을 겹겹이 감싸고 있는 삶의 고통을 털어버리고 싶었던 걸까? 한국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고 한다. 결정하기까지 힘들었지만, 결정하고 난 후에는 마음이 편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 마다가스카르로 곧장 향했다. 윤 회장이 운영하는 ‘클럽 마다가스카르, 깜시기네 주막’ 블로그의 글이 재밌다. ‘그리 머지않은 옛날 구한말 개화기 때에 홍도가 살던 시절을 한참 지나 100여 년이 지난 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라는 오지에 촌놈이 게으르게 살고 있었으니 그 이름이 깜시기라 하였다. 이 깜시기라는 촌놈은 2007년 클럽 마다가스카르라는 시답지 않은 여행사를 어쭙잖게 차려 놓고는 꾸물꾸물하면서 소꿉장난하듯이 운영을 시작하였다. 또 그렇게 이리저리 어영부영하던 어느 날인가 필요악의 하나로 민박집을 차려 놓고는 이 역시도 게으르게 지렁이처럼 꼬물꼬물하다가 모리셔스 사람이 운영하던 중 망해버린 좁쌀만 한 호텔을 여차여차하다가 이 역시 필요악에 따라 인수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깜시기는 윤 회장이다. 그가 말하는 필요악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 깜시기네 주막 입구(출처=‘클럽 마다가스카르, 깜시기네 주막’ 블로그)

“여행사를 먼저 시작했는데 몇몇 까다로운 한국 손님들이 현지 숙소를 마다하고 우리 집에서 민박하게 됐죠. 이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자기 블로그에 민박 얘기를 올려놔서 할 수 없이 게스트 하우스를 시작하게 됐어요. 민박을 영업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 그냥 싸게 받았어요. 음식이며 술도 후하게 내놨죠.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블로그에 막 올려주는 거예요. 맘에 든다고. 그것 덕분에 호텔까지 하게 된 거죠. 망한 호텔 하나를 인수해서 리노베이션했어요. 외국에서의 한국 식당은 문화도 파는 거니까 한국 정서에 맞춰 보자 해서 내부를 한국 분위기가 나게 많이 개조했어요. 한국 기와집 형태로 해보려니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처음에는 여러 가지 꿈을 꿔봤는데 내가 해볼 수 있는 수준으로는 주막집, 그냥 주막집 분위기가 나게 내부 인테리어를 꾸며봤죠. 조그마한 호텔이기 때문에 식당이 로비 겸해서 있고, 방은 8개가 있어요. 근데 주모가 없어요.”

한국에선 적응 못 했지만,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적응을 잘할 줄 알았는데 윤 회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더라” 였다. 처음 한동안은 한인 교민들과 잘 어울리다가 여러 가지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물질적인 손해보다 마음속에 서운함이 생겼다. 그런 마음이 한 사람 한 사람 생기다 보니 나중엔 모두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이었다. 해외 생활의 보이지 않는 두려움은 바로 외로움이다. 누군가와 관계가 소원해지면 두려움이 생긴다고 했다.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나?’ 거기서 비롯되는 문제가 많다. 윤 회장은 스스로 이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어울려서 잘 살아야지’ 하는 마음에 한인회장도 출마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소원해진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고, 많지 않은 교민들이 화목하게 살면 어떨까 하는 소망도 있었다. 그렇게 2년 동안 한인회와 함께 하고 있다.

“지금 마다가스카르가 정치적으로 안정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듭니다. 지난번 추석 행사 때만 봐도 크게 기부해주시는 분은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없는 가운데서 수줍게 십시일반이라고 조금씩 도와주신 분들이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그걸 보면서 어렵기 때문에 좀 더 서로를 생각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굉장히 감사했죠. 지금 마다가스카르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부분은 국제 사회하고의 관계입니다. 마다가스카르가 워낙 어려운 나라다 보니까 경제적 원조에 의존해서 나라를 꾸려가는 데요. 선진국들이 돈을 주겠다, 차관을 주겠다, 원조를 해주겠다 하면서 요구조건들이 따라다녀요. 근데 그 요구조건이 내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돈이 필요하니까 받아들이고 싶지만, 기존의 엘리트층은 그걸 반대합니다. 나름의 이득과 관련된 부분들의 보이지 않는 싸움인데 해결 실마리가 안 보여요. 그게 풀려야 우리 교민들도 일이 돌아가고 경제적으로도 좋아질 것인데 지금 1년 넘게 그러고 있습니다. 교민들에게 경제적인 문제가 잘 해결될 때까지 힘을 내자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 무른다바의 바오밥 나무와 윤 회장(출처=‘클럽 마다가스카르, 깜시기네 주막’ 블로그)

윤 회장에게 “지금 행복하세요?” 라고 물어봤다. 행복하다는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그런데 답은 “아니요”다. 그는 힘든 한국 생활을 접고 멀리 이민을 왔다고 해서 지금의 삶을 완벽하게, 행복하게 포장하지 않았다. 아프리카라서 특별한 무언가도 없다고 말한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은 것 같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사람 사이에 자잘한 싸움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헤쳐 나가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마다가스카르가 좋다.

“한국과 비교한다면 여기가 더 좋죠. 여기 왜 왔어요? 하면 게으르게 살려고 왔어요. 그게 되던데요. 한국에서는 빡빡한 스케줄에 내 시간이 없잖아요. 근데 여기선 다 내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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