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천상열차분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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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천상열차분야지도
  • 이형모 발행인
  • 승인 2014.11.1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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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모 발행인

가장 오래 된 하늘 전체 별 지도

“가을 밤. 하늘에는 별들이 한결 더 빛나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5등급보다 밝은 별이 사계절 동안 1,400개 이상 떠오른다.”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밤하늘의 별들에 관심을 가졌고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1995년 11월 11일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 6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서울대에서 열렸다. 유경로, 나일성, 박성래, 남문현, 이용삼 교수 등과 박창범 교수의 연구 결과들이 이 자리에서 함께 발표되었다. 이 학술대회는 천문학계와 일반인에게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그 과학사적 가치를 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돌에 새겨 제작한 천문도이다. 우리나라 전통과학사상 기념비적인 유물로서, 조선시대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했던 하늘에 관한 지식을 총집약해 놓은 천문도이다.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의 저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대한 설명을 요약 소개한다.

 

고구려 초기와 조선 초기, 하늘의 모습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본이 새겨진 돌판은 국보 제228호로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그 제작 유래에 대한 그림 설명이 있다. 이 천문도를 만들 때 조선 초의 대유학자 양촌 권근이 적은 것이다. 설명에 따르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석각 천문도의 인본을 원본으로 삼고, 조선 초 하늘의 모습을 참조하여 천문도를 일부 고쳐 새긴 것이라고 한다.

학계의 논란은 권근의 설명대로 이 천문도가 정말 고구려 천문도를 새겼는가 하는 점과 이것이 제작된 태조 때 실제로 당시의 하늘을 직접 관측하여 이 천문도의 원본 일부를 수정했는가 하는 문제가 논쟁의 초점이었다. 학계는 권근이 써 놓은 천문도의 유래를 부정하는 의견이 강했다.

고구려의 천문 지식수준으로 전천 성도(온 하늘 별지도)를 만들었을 리 없다는 것이고, 조선 초에도 역시 새로 별자리를 관측하여 천문도를 고칠 만한 기술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이태조의 혁명을 합리화하려는 정치적 목적의 산물이고, 옛 중국의 천문도 자료를 취합하여 만든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한편 루퍼스라는 영국학자는 통일신라 때 당나라 천문도가 유입되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조선 초에 고구려에서 전래되었다는 천문도 원본이 있었다면 그것은 당나라에서 보낸 천문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런데 천문도가 전래되었다는 기록은 고구려가 망한 지 24년이나 지난 뒤의 것이고, 고구려와 당은 서로 전쟁 중인 적대국이었으므로 이 추측은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중국에서는 루퍼스의 논문을 근거로 아예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이 ‘중국 황제가 고구려에 하사한 중국 천문도’인 것으로 규정짓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대부분이 천문도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그림설명을 연구하면서 얻어 낸 결론들이고, 그 과정 또한 개인적인 추측들에 의한 산물인 경우가 많다. 박창범 교수는 그림 설명만 가지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중앙에 그려진 천문도 자체를 분석함으로써 중국 천문도의 모방 여부나 조선 초의 수정 여부를 판별하고 관측 연대를 측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구의 자전축 즉 북극은 2만5천8백년을 주기로 별들 사이를 서서히 옮겨가며 하늘에서 원을 그린다. 이 변화를 세차운동이라 한다. 이 점을 이용해서 옛 천문도에 그려진 별자리들의 위치를 북극과 적도의 위치와 비교하면 그 천문도가 어느 시대의 밤하늘을 나타내는지 알 수 있다.

이 방법을 통해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연구한 결과, 천문도 중앙부인 북극 주변은 조선 시대 초 근처로, 그 바깥에 있는 대부분의 별들은 서기 1세기경인 고구려 시대 초로 그 시기가 밝혀졌다. 동서를 막론하고 일찍이 이만큼 이른 시기에 온 하늘의 별자리를 한데 모아 그린 성도는 없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관측 연대 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천 성도'라는 것이다.

 

조선 초에 관측하여 만든 별 지도(星圖)

관측자의 위치도 그림 설명과 어긋나지 않았다. 연구 결과, 관측 시점이 조선 초인 천문도 중앙부의 관측 지점은 한양의 위도 38도로 측정되었다. 또 관측 시점이 고구려 시대 초인 바깥쪽의 관측 지점은 고구려 강역의 위도인 39~40도 임이 확인되었다. 이는 원 천문도가 고구려의 것이고, 조선 초에 천문도의 가운데 부분인 북극 주변을 다시 관측하여 고쳐 그렸다는 말이 된다. 권근의 그림 설명과 일치한다.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대 석각본의 마모가 심한 뒷면에는 앞면의 별자리와 다른 중국 수나라 때 천문서인 보천가의 별자리가 있다. 태조본 뒷면은 연습용으로 판 것일까?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나라의 전통 천문지식을 대표하는 조선의 구법천문도가 모두 천상열차분야지도 태조본 앞면의 별 그림을 따랐다는 사실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진 별들은 실제 별의 밝기를 반영해 표현한 정도가 보천가를 포함한 중국의 그 어떤 성도보다도 더 정확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독자적인 관측으로 만들어진 천문도에서 유래되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단서이다. 별의 위치에 더하여 돌판에 새겨진 별 구멍의 크기가 별의 밝기 등급에 따라 섬세하고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일본에 전래된 조선의 별 지도

일본 최초의 천문도는 ‘천상열차지도’(1670)와 ‘천문분야지도’(1676)이다. 박창범 교수는 동경대 우에노 교수에게 부탁하여 천문분야지도의 천연색 사진이 실려 있는 도록 한 권을 구했다. 그런데 천문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선의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종대부’라는 별 4개로 이루어진 별자리가 하나 있다. 이것은 중국 어느 천문도에도 없는 조선 고유의 별자리이다. 그런데 일본의 천문분야지도에 바로 이 별자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상기해 볼 때, 또 조선만의 고유 별자리가 포함되어 있고 그 이름과 연결선까지 같다는 사실에서 17세기에 제작된 일본의 천문분야지도가 조선의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참조하여 만들어졌음이 증명된 것이다.

한국외대 박성래 교수의 설명으로는 천문분야지도는 ‘삽천춘해’가 만든 것인데, 그는 1684년에 ‘정향력’을 만들어 일본 최초의 달력을 만든 사람이었다. 삽천춘해가 조선의 선비로부터 역법을 배운 사람에게서 공부하여 정향력을 만들었다는 일본 측 기록이 있는데, 그 선비가 누구인지를 추적해 보니 조선의 진사였던 ‘나산 박안기’였다는 것이다. 조선 선비에게서 역법과 천문을 전수받은 일본 사람이 만든 천문도에서 조선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영향이 발견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박창범 교수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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