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병역 회피를 위해 국적세탁한 어느 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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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병역 회피를 위해 국적세탁한 어느 남자 이야기
  • 차규근 변호사
  • 승인 2014.11.1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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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규근 변호사(법무법인 공존)
오늘은 군대 가지 않으려고 두 번이나 국적세탁을 하다 덜미를 잡힌 어느 남자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에 다니던 A씨는 2003년 인터넷에서 알게 된 해외 거주 한국인 브로커에게 수백만원을 주고 남미의 어느 국가의 여권을 만들어 법무부에 제출하면서 국적상실신고를 하였다. 외국국적을 자진하여 취득하면 엄격한 심사 없이 우리 국적이 상실되며, 이 경우 병역의무도 더 이상 부과되지 않는 제도의 맹점을 악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A씨의 허위 국적 취득 범행은 3년 뒤 들통이 났고 결국 ‘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죄’ 등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A씨는 공판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해서 군 복무를 정상적으로 마치겠다”며 선처를 호소했고, 법원은 이러한 정상을 참작하여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A씨는 2007년에 형이 확정되자 태도를 바꿔 국적회복 신청을 취하했다. 그리고, 2009년도에 전에 문제가 되었던 그 남미 나라의 여권을 다시 제출하면서 ‘이번에는 합법적으로 그 나라 국적을 취득했다’며 또 다시 국적상실 신고서를 법무부에 제출하였다.

당시 법무부 국적과장으로 근무하던 필자는 A씨의 국적상실신고를 접하고서 정밀하게 심사를 하였다. 일반적으로 국적상실신고는 말 그대로 ‘신고’이기 때문에 엄격한 심사를 거치지 않으나 A씨와 같이 허위로 외국 국적을 취득하여 국적상실신고를 하는 사례들도 있기 때문에 필자는 국적상실 신고자의 외국 국적 취득 경위가 석연치 않거나, 해당 국가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잘 가지 않는 나라인 경우 등에는 엄격하게 심사를 하였다.

심사 결과, A씨의 출입국기록에 의할 때 해당 남미 국가에 장기 체류한 사실이 없이 거의 대부분을 국내에 체류한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종전에 재판을 받은 이후에도 해당 국가에 가서 체류한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이었다. 이에, 필자는 A씨에게 자신이 취득한 해당 국가의 시민권이 유효하다는 입증을 요구하였다. 필자는 과연 A씨가 해당 국가로부터 그러한 유효한 입증자료를 받아서 제출할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하였다. 그러자, A씨는 해당 국가의 공증인들이 자신의 시민권 취득을 확인하는 내용의 공증서를 제출하였다. 해당 국가의 공증인들이 공증해 준 내용으로서 얼핏보면 그럴 듯 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 내용이 A씨의 출입국기록 및 진술, 그리고 해당 국가의 국적법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여전히 의심스럽게 여긴 필자는 외교부를 통하여 해당 국가 정부에 A씨의 국적 취득이 진정한 것인지 여부를 공식으로 조회하였다.

그 결과, 해당 국가는 몇 달 후 놀랍게도 A씨가 자국 국적을 취득한 적이 없다는 공식 회신을 보내왔다. A씨가 해당 국가의 국적을 유효하게 취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삼았던 해당 국가 신분증은 A씨가 브로커를 통하여 매수한 해당 국가의 관리가 부정하게 발행해 준 것이었으며, 공증인들도 매수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에 필자는 A씨의 국적상실신고를 반려하는 동시에 병무청에도 이러한 사실을 통보하였다. 이 사건은 2009년도 당시 언론에 ‘병역회피 위해 6년간 국적세탁 34세 입대 때늦은 탄식’이란 제목으로 보도되기도 하였다. A씨는 그 후 34세에 현역병으로 입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 시민이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였다는 사유로 미국 국적포기신청을 하면 세금체납 여부,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여부 등을 심사하여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그 때 포기승인을 해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비하여, 우리나라의 경우는 복수국적에 대한 맹목적이고 뿌리깊은 부정적 인식으로 인하여 자진하여 외국국적을 취득하면 그것으로 우리 국적이 상실되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 절차도 ‘신고’로 처리되고 있다. 우리 국적이 상실되지 않는 것으로 하면 복수국적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제한적인 조건으로 복수국적을 용인하고 있는 현행 국적법에 의하여도 마찬가지이다.

국적상실을 ‘신고’로만 처리하고 있는 현행 제도를 한번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외국에서 살면서 여러 가지 생활상 불편과 필요성 때문에 부득이하게 외국국적을 취득하는 해외 교민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에도 우리 국적이 상실되는 현행 제도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도 한번 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외국 국적 취득시 우리 국적이 상실되지 않는다면, A씨도 이름도 생소한 남미 어느 국가의 국적을 그렇게 무리하게 취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국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우리 국적이 상실되지 않고 살아 있으므로 병무당국은 여전히 A씨에게 병역을 부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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