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반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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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반말의 비밀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4.10.2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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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반말과 존댓말이 정확하게 나뉘는 언어는 많지 않다. 일부 어휘에 존경의 표현이 있기는 하나 일반적인 대화에서도 반말과 존댓말을 구별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주요한 언어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상대에 따라 존댓말이 발달한 언어는 한국어와 일본어, 인도네시아의 자바어 정도이다. 따라서 존댓말을 하는 언어가 오히려 특이한 언어가 된다.

동물행동학에 관한 책(고바야시 도모미치, 인간은 왜 박수를 치는가)을 보다가 우리말의 반말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동물행동학이나 인간비교행동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강한 개체는 에너지를 조금 쓰려 하고, 약한 개체는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존댓말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윗사람은 반말을 씀으로서 에너지를 덜 소비하게 되고, 아랫사람은 존댓말을 써서 에너지를 더 많이 쓰게 된다. 아랫사람이 더 많은 행동을 하게 되는 원리와 같다. 일반적으로 아랫사람은 바삐 움직이고, 윗사람은 동작이 느리다. 말도 느리고 짧다.

반말은 반만 말하는 것이다. 말이 짧아지는 게 반말을 의미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존대를 나타내는 어휘를 살펴보면 ‘말과 말씀, 병과 병환, 묻다와 여쭙다, 밥과 진지’ 등 높임말이 길다. 또한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면 반만 말한다는 것이 금방 이해가 된다. 명령을 표현하는 ‘웃어/웃어요/웃으십시오’의 느낌을 보면, 길어질수록 존대가 되고 짧을수록 반말이 된다.

존댓말은 길게 돌려 말하는 것이다. 존대를 나타내는 ‘-(으)시-’를 어미 앞에 붙이는 것도 길게 말하는 것이 존대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윗사람에게 나의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프다’를 ‘편하지 않다(편찮다)’로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죽다’를 ‘돌아가시다’, ‘먹다’를 ‘드시다(들다)’로 표현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돌려서 말하다 보면 말이 많아지고, 길어질 수밖에 없다.

반말에도 존댓말에도 숨어있는 태도가 있다. 숨어있지만 느낌으로 전달되는 태도이기도 하다. 종종 아랫사람에게 존댓말을 하면서도 거만하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일반적으로 낮은 목소리는 위압적이다. 위엄을 나타내려고 하는 태도일 때 목소리를 깔게 된다. 윗사람 앞에서는 존댓말을 할 때 목소리를 깔지 않는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하는 존댓말은 여전히 고압적일 수 있다. 반면 밝은 목소리의 존댓말은 기분이 좋아진다. 반말도 밝은 목소리일 때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

같은 반말이라고 해도 ‘해라’ 보다는 ‘해’가 가볍다. 같은 존댓말이라도 ‘하십시오’보다는 ‘해요’가 가볍다. 격식체에 ‘해라’나 ‘하십시오’가 쓰이고, 비격식체에 ‘해’나 ‘해요’가 쓰이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말을 잘 들여다보면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를 알 수 있다. 서로에게 편안함과 기쁨이 되는 언어생활이었으면 한다.

우리는 반말을 하면서 내가 왜 반말을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는다. 난 왜 반말을 하는가? 누구에게 반말을 할 것인가? 반말을 할 때 나의 마음가짐은 어떤가? 위압적인가? 얕보는 마음인가? 친밀함의 표시인가? 상대방은 내 반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존댓말을 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 아랫사람에게 존댓말을 하는 내 심리상태는 무엇일까? 아예 서로 반말을 하는 것은 어떤가? 서로 존대를 하는 것은 어떤가?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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