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품 안의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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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품 안의 자식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4.10.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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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품’이라는 말은 ‘가슴’과 유의어처럼 쓰이지만 느낌은 전혀 다른 말이다. ‘품’이라는 말에는 온도가 있다. 따뜻함이 있고, 정이 담겨 있다. ‘품’이라는 말만 들어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 단어의 마력이다. ‘엄마 품’이라는 표현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도 따뜻함이 겹쳐지기 때문이리라. ‘아빠 품’이나 ‘그대의 품’이라는 말에도 다정함이 있다.

‘품’과 관련된 표현 중에 ‘품 안의 자식’이라는 것이 있다. 주로 낳아서 기를 때는 부모만을 생각하던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부모에는 관심이 없음을 한탄하며 사용하는 말이다. 어린 시절 아이들은 엄마가 조금만 안 보여도 울고 난리가 난다.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처럼 불안해한다. 엄마 품을 찾는 것이다. 간절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좀 지나면 아이들도 안다. 엄마는 단순히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방을 혼자 쓰고 싶어 한다. 아이 나름대로의 독립선언인 셈이다. 하지만 굳은 결심의 선언도 밤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밤이 깊어 가면 아이들은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슬그머니 부모의 방으로 찾아든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린 아이처럼. 부모의 품을 벗어나기가 쉬운 게 아니다. 밤에 부모 잠자리 옆에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는 부모가 한둘이 아니다.

그렇지만 영 엄마나 아빠의 품을 떠나지 못할 것 같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밤에 혼자서도 잠을 잘 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문을 열어 봐도 이제는 더 이상 안 온다. 엄마가 안 보이면 울던 아이가 이제는 집에도 늦게 온다. 방문을 닫고 지내기도 한다. 품을 찾기는커녕 소리 없는 단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서서히 품 안을 떠나는 시기가 온다.

아이가 크면서 부모와의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수많은 일들이 생기고, 부모보다 가슴 저리게 그리운 사람도 생겨난다. 그러고는 한 발짝씩 부모의 곁을 떠나간다. 부모는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어차피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홀로서야 하는 자식이기에 응원하며 손을 놓아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손을 놓아야 함이 아파서 부모는 눈물짓지만, 홀로 힘든 일을 이겨나가는 자식을 보며 대견함을 느끼기도 한다.

부모의 품을 떠나가는 시기가 저마다 차이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부모의 곁을 떠나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대학에 갈 때와 군대에 갈 때, 결혼할 때가 품 안을 떠나는 시기가 된다. 아이가 대학을 먼 곳으로 진학하게 되면 품 안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 애절한 이별을 처음 하는 순간이다. 자식이 군대에 가는 것이나 결혼을 하는 것도 부모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품에서 내놓는다는 것은 기쁘면서도 아린 일이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은 주로 자식이 부모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한다. 서운해서일 것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도 부질없다. 자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의 곁을 떠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마침내는 부모의 곁을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품 안에 자식이 있을 때 더 잘 해 주고,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야 한다.

나에게도 두 아들이 있다. 이제 그 아이들도 서서히 품 안에서 떠나가고 있다. 여전히 미덥지 않고 불안하지만, 스스로 잘 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 간절히 바란다. 아직 내 품에 있는 동안 더 잘 보살펴야겠다. 내 품 안에 있는 참 귀한 아이들이 아닌가? 품 안의 자식이 그리울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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