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단군과 환웅 그리고 개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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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단군과 환웅 그리고 개천절
  • 이형모 발행인
  • 승인 2014.10.09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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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단군기원과 개천절

10월 3일은 개천절이다. 조상들이 제도를 갖춘 나라를 처음 시작한 날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라고 시작하고 있다.(1948년 7월 12일 제정) 그리고 1948년 9월 25일 제정된 대한민국 법률 제4호 ‘연호에 관한 법률’은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단군기원으로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에서 배울 때는 ‘반만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었는데 헌법 전문에는 ‘반만년’이 없다. 그러나 단군기원을 국가연호로 함으로서 ‘반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는 서기 2014년이고, 단기 4347년이다.

고려 때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단군이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아사달에 조선을 개국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 배달의 나라가 있었다.”고 짧게 기록하고 있다. 환웅의 신시 배달국 개천과 단군의 조선 개국이 1565년의 년대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복기억’ 되어 개천절에 우리는 ‘단군의 조선 개국’만 떠올린다.

환웅 임금이 신시에 세운 배달의나라

그런데 신라 때 승려 안함로가 쓴 ‘삼성기전 상편’과 행적이 확실치 않은 원동중이 쓴 ‘삼성기전 하편’에는 <환웅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환국과 환인시대의 뒤를 이어) 환웅이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을 ‘천평’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로 정했다. ‘천부의 징표’를 지니시고 다섯 가지 일을 주관하시며 세상에 계시면서 교화를 베푸시니 인간을 크게 유익하게 하였더라. 또 ‘신시’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이라 불렀다.”(삼성기전 상편)

“이에 환웅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밑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풍백, 우사, 운사를 데리고 곡식, 생명, 형벌, 질병, 선악의 다섯 가지를 주관하며,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모두 주관하여 세상을 교화하였으니 널리 인간 세상에 유익함이 있었다.”

“환웅천왕이 처음으로 몸소 하늘을 여시고(하늘에 제사지내고) 백성을 낳아 교화를 베풀고 ‘천경’과 ‘신고’를 가르치시니 무리들이 잘 따르게 되었다.”(삼성기전 하편)

하늘을 연 것(개천)은 하늘에 제사지낸 것이고 환웅천왕이 처음으로 한 것이다. 1565년 후에 단군이 조선을 개국했을 때, 단군은 ‘환웅이 베푸신 신시의 제도’를 그대로 계승했고, ‘신시의 가르침’도 그대로 이어 받았다. 조선을 개국할 때 백두산 신단수 아래에서 단군왕검께서 8백명 족장과 함께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나라를 시작한 것은 '신시의 제도'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단군왕검께서 가르치신 “하늘을 공경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근본에 보답하라.”는 세 가지 덕목에서 ‘근본에 보답하라’는 것은 ‘환웅천왕께서 배달의 나라를 개천하신 고마움을 잊지 말고 후세에 전하라.’는 다짐이다.

조상의 역사기록을 배척한 식민사학

오늘 우리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 총독부가 1922년부터 1938년까지 ‘조선사편수회’를 두어 왜곡 날조한 식민사학의 ‘조선사’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조상들이 남긴 역사기록을 배척하고 일제가 선택한 역사편집을 이어받은 것이다.

1960년대까지 한국의 고고학자와 역사학자들은 ‘한반도의 청동기는 2천4백 년 전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4천4백년 전에 시작된 고조선의 존재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불과 5십 여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한반도의 청동기 유물이 4천 년 전후에서 출토된 것을 인정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 사회과학원이 주도하는 ‘요하문명공정’은 고조선과 배달의 나라의 강역인 만주 요녕성과 내몽고에서 6천년 이전의 주거와 국가의 유적과 유물을 발굴하여 논문을 내놓고 있다. 고조선과 배달의 나라가 잠에서 깨어나 역사로 돌아오고 있다.

세종실록에 “세종7년(1425년) 9월 25일 평양에 단군사당을 건립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단군을 국조로 확신하고 제도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단군의 자손’이다. 그런데 단군왕검께서는 ‘환웅천왕께서 배달의 나라를 개천하신 은공을 잊지 말고 후세에 전하라.’고 가르치셨다.

개천절에는 환웅과 단군, 두 분 ‘큰 조상님’을 기억하자.

-신시개천 5911년, 단군기원 4347년, 서기 2014년 개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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