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요하난 벤 자카이의 랍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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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요하난 벤 자카이의 랍비학교
  • 이형모 발행인
  • 승인 2014.08.2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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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유대-로마 전쟁

 

▲이형모 발행인

탈무드의 앞부분에 소개되는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서기 66년부터 70년까지 1차 유대-로마 전쟁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다. 유대의 파멸을 초래한 이 끔찍한 전쟁은 왜 일어난 것일까?

로마제국의 건설자 '카이사르'는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 때문에 처음 유대를 로마제국으로 편입할 때 대단히 우호적인 정책을 폈다. 유대인 최고 제사장에게 종교적 통치권을 인정하고,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군사적 방어권도 허락했다.

주요 항구 '야파'와 해상 무역권을 돌려주고, 그리스인과 경쟁관계에 있는 유대인에게 경제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주었다. 유대인은 경제적 번영을 누렸고 대항쟁 직전 인구는 바빌론의 1백만을 포함해서 대략 8백만으로 추정된다.

66년의 반란은 카이사리아(지금의 트리폴리)에서 그리스인과 유대인 사이에 벌어진 큰 소송에서 그리스인이 승소한 직후에 발발했다. 승소한 그리스인들이 유대인을 학살하며 승리를 축하하는 동안 로마군 수비대는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았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예루살렘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
바로 이 시점에 로마 총독 플로루스가 유대인들의 체납된 '속주세' 대신 예루살렘 성전에서 17탈렌트의 금화를 몰수한 일이 발생한다. 몰수 금액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신성한 성전을 모독한 행위에 분노한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예루살렘에서 로마 수비대 병사들이 참살된 뒤, 급파된 시리아 주재 로마군마저 참패하고 퇴각했다. 이에 로마황제 네로는 영국 정복에 참전했던 제10군단을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주고, 최정예 3개 군단과 다수의 외인부대를 이끌고 유대를 정복하도록 명령했다.
 
요하난 벤 자카이의 탈출
바리새파이며 유명한 랍비인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유대 전역이 8만명의 로마군에게 점령당한 상황에서 반란을 주도하는 강경파인 '열심당'의 무장투쟁은 실패하게 되고, 로마군에 포위된 예루살렘은 학살당하고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을 예견했다.

그는 민족의 정치적 독립보다는 유대교 보존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평화를 얻기 위해 항복하자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열심당에게 거부당했다. 이 이야기는 홍익희 선생이 그의 책 ‘유대인 이야기’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흑사병에 걸린 척 위장한 그는 열심당원들의 눈길을 피해 예루살렘을 탈출해서 로마군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의 막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장군을 만나 머지않아 그가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뒤, 황제가 되면 자신들이 예루살렘 근처에서 평화롭게 유대 경전을 공부할 수 있는 조그만 학교를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매우 놀랐지만 예언이 이루어지면 호의를 베풀기로 약속했다"
 
예루살렘의 파멸과 랍비학교 개교
같은 해 로마황제 네로가 자살했다. 세 명의 정치군인들이 여러 지역에서 왕위에 올랐으나 모두 몇 달 만에 살해되었다. 바로 이때 유대 원정군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가 군대에 의해 새로운 황제로 추대되고 서기 69년 로마 원로원이 즉위를 허락했다. 예언이 성취된 데 놀란 베스파시아누스는 후임사령관인 아들 '티투스'에게 약속을 지키도록 명령했다. 파멸된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도시에 유대학교 ‘예시바’를 세우도록 허락받은 것이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바리새파를 이끌고 텔아비브 남동쪽 약 2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야브네로 갔다. 거기서 율법중심의 유대교를 재건하고 율법학교를 개설했다. <토라>를 가르쳐 매년 소수의 랍비를 길러내고 유럽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 마을에 보냈다.
이것이 패망한 유대인들의 생존에 구심점이 된다. 유대인에게 교육은 곧 신앙이다. 나라는 망해서 없어졌지만 예시바를 통해서 유대교와 전통이 전승되기만 한다면 유대 민족은 역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대 유대에서는 랍비를 길러내는 율법학교인 예시바 1학년을 ‘현자’라 불렀고, 2학년을 철학자라 불렀다. 그리고 최고 학년인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학생’이라 불리었다. 이러한 사실은 겸허한 자세로 배우는 자가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으며, 학생이 되려면 수년 동안 수업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대인 공동체는 학습공동체
율법학교를 졸업한 랍비들은 아마도 스스로 ‘평생학생’이라는 자각을 품고 살지 않았을까? 그리고 랍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유대인 공동체는 ‘학습공동체’인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도 언어와 전통과 정체성을 2천년 동안이나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4년 가을 LA 근처 클레어몬트에 살고 있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를 찾아갔을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95세의 노교수께서 아직도 월스트리트 저널에 칼럼을 쓸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그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평생학습은 사람을 젊게 만든다"
이제는 전 세계 175개국에 흩어져 사는 720만 우리 한인들도 각자의 한인사회를 ‘학습공동체’로 만들고 평생학습을 하자. 후세에게 '한인의 언어와 전통과 정체성'을 제대로 전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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