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중국의 등소평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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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중국의 등소평 물결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4.08.1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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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우한 한향삼천리관리 유한회사 대표)

가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제가 살고 있는 황강(黄冈)이라는 도시에 내립니다. 날씨가 제법 선선해지면서 그 동안 너무 더워서 날개를 못 펴던 모기가 활개를 치기 시작합니다. 7,8월 모기가 아니라, 9,10월 모기입니다.

알다시피 황강은 아주 작은 도시입니다. 그러나 황주(黄州)라는 지명은 아주 오래된 문화와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삼국지의 조조와 손권, 그리고 유비가 피 말리게 싸움을 한 곳도 황주입니다. 이 영토를 차지해야 중원 내륙의 기반을 잡을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 황주라는 곳은 그렇게 상,공업적으로나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맙니다. 자연스레 찌들고 가난한 곳이 됩니다.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방법은 오로지 공부를 잘 해서 우한(호북성 성도)으로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황강에는 유달리 수재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임표라는 장군은 이런 가난한 황강에서 태어나 한 때 모택동이 지명한 후계자 반열에까지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 주듯이 그는 타고 가던 비행기가 몽고의 사막 한가운데서 폭발하면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동행한 가족과 수행원 그리고 핵심 참모들도 그와 함께 생을 마감합니다. 저는 우연히 지나는 길에서 "모택동과 임표"란 책을 보고 구입해 요즘 읽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최근 중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등소평의 관한 드라마도 열심히 보는 중입니다. 아울러 황강의 역사라는 책도 한권 구입해서 보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모택동과 임표 그리고 등소평이라는 세 인물이 동시에 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을 빼고 중국 공산당을 설명하기에는 아마도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이 현재 중국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세월이 변하고 있는 겁니다. 한 마디로 “뜨는 등소평, 지는 모택동 그리고 여전히 잊혀진 임표“로 압축이 됩니다. 원인은 많을 겁니다. 그러나 역사는 현재를 말해주는 증거이자 교과서일 수 있습니다. 후세의 냉정한 평가입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모택동의 문화 대혁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 비판의 수위는 물론, 결론도 난 상태라고 볼 수있습니다. 문화대혁명이 모택동의 최대 과오라는 것입니다. 임표와 모택동의 관계를 저술한 지은이는 노골적인 비판은 아니더라도 은연중에 임표의 죽음을 비유하여 모택동의 몰락을 말 해 줍니다. 임표를 죽임으로서 모택동의 권력도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후계자로 지목한 사람이 자기에게 모반을 시도했다는 것에 대해 중국의 당시 7억 인민들은 이해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최고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면서 작가는 모택동이 생전에 임표에게 한 말을 써 놓았더군요. “네가 없었다면 내가 오늘 어찌 있었겠는가!” 모택동은 생전에 딱 한번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말로 임표를 추켜세웠다는 겁니다. 이런 모택동이 임표를 죽인 겁니다. 그런데 이런 극도의 칭찬을 받은 임표는 왜 반기를 들고 모택동을 암살하려 했을까요? 중국 역사는 이 질문에 아직 정확한 답을 내 놓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설은 많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임표가 생각했던 “모택동을 향한 애증”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임표의 죽음은 작가의 지적대로 사인방의 몰락과 동시에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했던 모택동의 몰락을 가져오면서 중국이 20세기 최고의 지도자라고 치켜세우는 등소평의 복권과 그의 위대한 개혁 개방의 등장을 가져다줍니다. 그의 개혁ㆍ개방 30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온 천지 사방에서 등소평의 추모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는 중입니다. 등소평을 향한 중국인민들의 평가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잘 살게 되었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입니다. 권력 투쟁 보다는 인민의 윤택한 삶에 더 집중을 했다는 겁니다.
 
이 쯤 되면 중국의 근대 지도자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이 별반 차이가 없음을 느낄 겁니다. 잘 살게 해준 대통령, 그리고 나라를 빚더미로 몰고 간 전직 대통령과 빈부의 차이를 엄청나게 벌려놓고 숫자상의 경제 발전을 자기의 공적으로 말하는 지도자들이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역사가 모택동과 임표를 잊어 가듯이 우리도 이런 자질 부족했던 지도자들을 잊어 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백성들이 훗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대통령이 나오길 학수 고대하면서 말입니다.
 
한 때, 중국 근대사에서 가장 총명하고 위대했던 임표 장군의 고향인 황강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나그네인 제가 그와 모택동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역사는 지금도 이렇게 흘러갑니다. 장강의 물결도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의 조그만 도시, 임표라는 특출한 인물이 태어난 곳에서 느껴보는 중국은 확실히 그와 모택동을 제쳐두고 등소평이라는 지도자에게 후한 점수를 주면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음모와 암살 그리고 무수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던 문화 대혁명은 중국 인민의 가슴속에서 지우고 싶은 과거가 된 겁니다.
 
오직 인민을 위해서 개혁을 밀고 나갔던 등소평만이 중국인들의 가슴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겁니다. 권력이 비록 총구에서 나왔지만 총으로 잡은 권력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이토록 냉정한 겁니다. 싸움질로 날밤을 새는 우리 지도자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 기억에 남을런지요. 역사가 뭔지 알기는 아는 건지...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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