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멘탈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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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멘탈 붕괴'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4.07.1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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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대표(우한 한향삼천리관리 유한회사)사
저는 이번에 비교적 긴 시간을 고국에서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의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여름밤을 뒤로 한 채 40도 불볕더위와 습기가 많은 중국의 밀림(?)으로 차마 들어가기가 싫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내일 모레로 다가온 귀국의 문턱에서 한국에서 보낸 지난 시간을 돌아봅니다.
 
결론은 즐겁고 행복했다는 겁니다. 많은 지인들과 모처럼의 교제를 나누면서 배운 점도 많습니다. 아직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고교 동창생들의 모습에서 7080세대들의 고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물질적 보상이 아닌 정신적 가치를 위해서 노년을 열심히 가꾸고 다듬으면서 살고 계신 선배들의 모습에서는 인생의 마무리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도 배웠습니다.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은 나이를 먹으면서 모두 비슷해진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태어나서 열심히 살다가 죽어가는 겁니다. 다만, 죽기 전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무리를 하는가 하면, 소수의 사람들은 일찍 포기를 하는 겁니다. 저 또한 일부 동창생들의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을 들어 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잠시 눈가에 눈물도 고이더군요. 언젠가는 막걸리 한잔을 앞에 두고 그 친구와 만나고 싶다는 이방에서의 소박한 바람이 무너진 겁니다. 더 이상 고국 땅에서 볼 수가 없는 겁니다. 산자와 죽은 자의 차이가 극명하게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말이 없습니다. 오랜만에 찾아 온 옛 친구를 볼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친구들은 왜 일찍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요? 어린 자식들과 여전히 예쁜 아내를 두고 뭐가 급해서 5대조 할아버지 산소 밑에 자리를 잡아야 했을까요.
 
저도 지난 주에 새벽 4시에 일어나 황태포와 막걸리 한 통을 들고 고향 포천의 아버님 산소를 찾아 갔었습니다. 더운 여름이라 소주보다는 막걸리가 날거라는, 아직은 조금 남아있는 안타까운 불효의 잔재를 가슴에 품고 달려 간 겁니다. 생각해 보니, 정말로 살아생전에 아버님께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따라 드린 적이 없는 듯 했습니다.

가족들과 동해안 백사장에서 마구 마시던 차가운 소주와 싱싱한 우럭회는 생각이 나도, 도무지 삼복 무더위에 시골집에 내려가서 아버님께 따라 올린 막걸리 생각은 나질 않더군요. 산소에 도착해 보니 역시 3대조 할아버지 밑에 아버님은 옛날 그대로 계셨습니다. 이렇듯 죽은 자들의 순서는 없는 겁니다. 5대조 밑에 4대조와 그 밑의 3대조, 2대조는 살아 있는 후손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죽은 자들의 배열이 아니라 산자들이 순서를 만들어 놓았을 겁니다.
 
산소에서 내려와 집 앞의 순대국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직도 채 아침 7시가 안 된 시간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더군요. 그런데 맛있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국을 받아들고 고개를 들어 TV를 쳐다보니 브라질이 독일에게 5대0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뭔가 잘못 본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흐린 눈동자에 있는 힘을 주고 자세히 보니 틀림없이 5대0 이었습니다.

시간은 이제 막 후반전을 시작한 시간이더군요. 그리고 순대국에 양념장을 넣고 후추가루 조금 털어 넣고 깍두기 국물 따라서 넣다보니 다시 한골이 들어 가 있었습니다. 그런 후에 순대국을 거의 다 먹어 가는 중에 다시 한골이 들어가더군요. 이 정도가 되면 브라질이 망한 겁니다. 누가 봐도 브라질은 끝난 겁니다. 브라질 축구가 자살을 한 거나 마찬가지가 된 겁니다. 죽은 겁니다. 사람이나 축구 선수나 이렇게 죽어가는 겁니다.
 
제 아무리 날고기는 조자룡 같은 장수라 해도, 제 아무리 50 미터 이내를 눈을 감고 거의 홀의 1미터 이내로 붙이는 귀신같은 골퍼라 해도 결국 멘탈이 무너지면 죽는 겁니다. 50대에 죽어간 사람들의 대부분이 우울증에 걸려서 혼자서 고독하게 죽는다 합니다.

고독하면 우울해지고 우울해지면 죽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겁니다. 세상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이 없으면 사람은 하늘로 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브라질 선수들이 재주가 부족해서 진 것이 아닐 겁니다. 정신적으로 한번 무너지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식으로 내려가는 겁니다. 저 또한 중국 땅에서 이런 순간의 외로움을 많이 겪어 보았습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친구가 이해가 가더군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용서는 할 수가 없는 겁니다.

한국에 와서 늘 느끼는 현상은 사람들의 삶의 가치가 상당 부분 물질적 성공에 있다는 겁니다. 물론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를 가나 비슷할 겁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삶은 유독 그런 경향이 심하다는 생각입니다. 사회적 구조와 인간관계도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겁니다.

그래서 인생 후반기의 삶과 평가도 거의 공식화되어 있는 겁니다. 무조건 많이 가진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없는 사람, 아직도 더 벌어서 자식들 먹여 살려야 하는 50대들의 삶은 실패 쪽에 속하는 겁니다. 조금은 내려놓고, 심지어 한눈을 팔면서 다른 방향도 생각할 수도 있으련만 이미 코너에 몰린 조급하고 초조한 환경은 그 마저 허락해주질 않는 겁니다. 그래서 죽는 겁니다. 죽어야 해결이 된다는 생각을 매일 하다 보니 마침내 죽는 겁니다.
 
특히 그동안 많이 가졌다가 졸지에 망가진 사람들의 정신적인 붕괴는 아주 빠릅니다. 또한 갑자기 퇴직한 사람들의 정신적인 허탈감도 큰 겁니다. 세계 최고의 브라질이 2대0에서 7대 0까지 가는 시간이 불과 60여분 걸린 겁니다. 강한 의지와 정신력을 바탕으로 결승전 연장 후반에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트린 독일과 기술의 차이가 난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멘탈"이 무너진 겁니다.

중국 땅에 와서 외롭게 죽어간 교민들도 많다고 합니다. 중국 사람들과 기술력과 조직력에서 진 것이 아닙니다. 정신력에서 졌을 겁니다. “중국에서 3년 이내의 반드시 성공!” 이런 단순한 공식을 갖고 “니 하오?” 라는 중국말도 한마디 모르고 들어 왔다가 망한 겁니다. 명확한 목표 외에도 강한 정신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겁니다.

아니, 성공보다는 정신력이 생존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몰랐을 겁니다. 우선은 생존해야 성공도 실패도 할 수 있는 겁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인간이 살아가는 땅에는 오늘도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면서 세월이 가고 있습니다. 실패가 있으니 성공도 있는 겁니다. 죽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부디 많은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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